추석

박상옥 | 기사입력 2014/08/25 [17:30]

추석

박상옥 | 입력 : 2014/08/25 [17:30]
          추 석

                         오탁번 (1943 ~)
 
벌초를 해서 깎은 머리가 된
추석무렵의 무덤들이
띠앗 좋은 오누이처럼
왕겨빛 가을 햇볕 아래
도란도란 다정하다
-중략-
혈이 딱 맺은 명당에 묻혀
자손들 출세하기만 빌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촉루가 된 세월 잊어버리고
이승의 가마솥에서 피어나는
송편 찌는 솔잎 냄새에 입맛을 쩝쩝 다신다
정말로는 자시지도 못하면서
뭘 그러시냐고
잠자리와 방아깨비들이 날아와서
버릇없는 돌쟁이 손자처럼
자꾸 간지럼 먹인다.
 

▲ 박상옥 <시인>     ©
중추절(仲秋節)은 한가위라고도 한다. 추석날 아침에는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가서 여름비에 무너진 무덤 보수와 벌초를 한다. 햇곡으로 준비한 제물을 조상에게 먼저 제물로 선보이며 1년 농사의 고마움을 조상에게 전한다. 명절 중에서 가장 풍성한 때이긴 하지만, 올 해는 세월호에 잇댄 여가가지 사건들이나 명절을 받아들이는 세대차이로 하여 그 어느 해 보다 마음 가난한 명절이 아닐까 싶다. 서울생활에 환멸을 느껴서가 아닐 것이다. 오탁번 시인이 고려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퇴직한 후, 고향 제천시 백운면 애련리 모교에 둥지를 튼 이유는 고향이란 어머니 같은 곳이기 때문이리라. 옛날의 애련초등학교 교실 그대로 원서문학관을 세우고 시(詩)와 자연과 노닐었을 뿐인데. 시인은 어느덧 잠자리나 방아깨비들과 대화가 통하는 신선이 다 되었으니 동상으로 남은 어머니상이 늘 빙그레 웃으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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