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의 자랑, 대몽항쟁 그리고 김윤후

이규홍 대표이사 | 기사입력 2014/10/23 [14:41]

충주의 자랑, 대몽항쟁 그리고 김윤후

이규홍 대표이사 | 입력 : 2014/10/23 [14:41]
▲ 이규홍 대표이사     ©
충주신문에서 십 수년째 개최해오고 있는 김윤후 장군 추모제는 우리 충주가 크게 자랑해야 할 역사적 큰 승리이자 우리나라 역사 속에 가장 오래도록 백성들이 수난을 겪었던 치욕스런 전투 속에서 승리한 빛나는 전사로 기록될 역사적 쾌거였던 것이다. 충주에서 국가를 수호하고 이 나라를 위기에서 구출한 큰 승리가 2개 있는데 그것은 바로 김윤후 장군과 충주민들의 대몽항쟁과 6․25한국전쟁 시 첫 승리이자 1개 대대가 적 1개 연대를 크게 무찌른 동락전투이다.

김윤후 장군이 이끈 충주산성은 70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몽고군 10만 대군을 막아냈고 이로 인해 경상남북도, 강원도 남부 일대가 유린당하는 것을 막아낸 큰 전투이다. 또한 동락전투 역시 김재옥 여교사의 기지와 6사단 7연대 2대대장 김종수 소령의 과감한 결단력과 판단력으로 승리를 이끌어내 당시 소련의 반대로 유엔군 파견이 어려워진 국면을 전투의 승리로 노획한 소련제 무기를 유엔에 보내 유엔군 파병을 이끌어내 우리나라를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구해낸 빛나는 전투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큰 전공이 우리 충주가 그동안 발전의 뒤안길을 헤매인 것과 충주시의 적극적 홍보 부족으로 빛나는 업적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전투의 승리 정도로만 취급당했던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번 10월 23일 치러진 김윤후 장군 추모제 및 대몽항쟁위령제는 이러한 업적을 재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더욱 발전시키고 홍보하여 역사를 제대로 파악하면서 우리 충주를 빛나는 역사의 고장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 충주신문에서 개최하는 행사이다.

김윤후 장군은 백현원 스님으로 몽고의 2차 침입 때 승병으로 출전해 용인 처인성에서 승병 및 관․군․민을 지휘하여 적장 살레타이를 활로 쏴 죽여 적을 퇴각케 한 공노로 고려 조정에서 상장군 벼슬을 내리자 극구 사양하고 벼슬을 받지 않았다. 또한 전투보고에 김윤후가 살레타이를 활로 쏴 죽인 것으로 보고된 것을 찬양하자 내가 활로 쏘지 않았다고 하고 그 공을 승병들과 처인부곡민들에게 돌려 처인부곡이 처인현으로 승격하는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없던 공도 만들어내려고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생각한다면 김윤후 장군의 처사는 범인으로서는 생각하지 못할 일 아닌가. 또한 벼슬을 마다하고 스님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수행의 길을 걷겠다고 한 것도 정직하고 올바른 성품에서 나타난 것이다.

장군은 이후 수행에 정진하다가 몽고군의 계속된 침략과 백성들의 수난을 보다 못해 다시 출사하기로 마음먹고 조정의 간청을 받아들여 섭랑장 벼슬인 충주산성 방호별감을 제수받아 충주성을 지키게 된 것이다. 때마침 몽골의 5차 침입이 시작되었고 야굴이 이끄는 10만대군이 양평 천룡(지금의 노은 보련산성)을 쳐서 항복을 받고 이곳에 피신해있던 황려(지금의 여주)군민과 천룡군민 그리고 고려를 배신하고 몽골에 붙은 이현 아모간 홍복원을 앞세워 충주성으로 진격, 충주산성(지금의 대림산성으로 추정)을 포위 공격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시작한 충주산성 전투는 70일을 끌고 있었고 산성에서 방어하는 군사들과 충주민은 부상과 연일 계속되는 싸움으로 피로가 누적돼 충주산성이 풍전등화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김윤후 장군은 보관해두었던 노비문서를 꺼내오라고 시키고 모두 모이라한 다음 노비문서를 불태우며 ‘이제부터는 귀천이 없다. 누구든 열심히 싸워 그 공과에 따라 벼슬도 내리고 상도 내리겠다'하며 사기를 북돋아 주었다. 이에 싸움에 임하는 군사와 양민, 천민 모두 사기가 올라 결국 야굴부대의 내분을 이끌어내었고 그 결과 야굴이 본국으로 송환되고 자동 충주성 전투는 70일의 사투 끝에 승리를 하게 된 것이다. 이밖에도 충주산성은 지용수가 이끄는 노군 잡류별초가 1차 침입 때 승리를 거둔 바 있고 작은 승리로는 다인 철소민전투, 금당협전투, 대원령전투, 월악산성전투, 박달현전투 등이 있다.

이처럼 충주는 대몽항쟁에 있어 크게는 2번, 작게는 5,6회 정도의 승리를 함으로 인해 몽고인들에게 충주를 확실히 각인시켜주고 고려를 수호한 충성스런 고장으로 국원경이라는 칭호를 제수받았다. 그만큼 강인한 정신력과 후손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준 대몽항쟁의 정신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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