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을 담그며

박상옥 | 기사입력 2014/11/18 [10:14]

김장을 담그며

박상옥 | 입력 : 2014/11/18 [10:14]
김장을 담그며

                     김선호 (1958~)
 
가으내 익은 것들
죄다 고개 숙이 잖니
 
더러는 어수룩하게
밑지면서 사는 거야
 
기어이
짠맛을 봐야
그 오만을 버리겠니.
 
어떠니 마늘냄새
고춧가루 맵지 않니
 
어리굴젓 버무리듯
얼큰하게 한데 섞어
 
한 세상
사는 거란다
가슴 열고 키 맞추며.
 
▲ 박상옥 <시인>     ©
김치가 넉넉해야 겨울이 따스한 시절이 있었다. 행낭 마당엔 동산처럼 배추가 쌓였으니. 이틀을 절이고 이틀을 버무렸다. 아줌마들이 모여 김장 하는 날은 겨울문턱의 잔치마당이었다. 가마솥에선 육개장이 끓고, 장정들은 뒤 안에서 김치광을 만들고, 크고 작은 독들이 김치광으로 들어가 겨울을 익혔다. 혹한의 겨울은 매운맛 짠맛 받아들여 잘 익은 김치가 넉넉해서 훈훈했다. 김치 담그는 날, 그 정겨운 풍경도 옛 이야기가 되어 간다. 남극의 황금펭귄처럼 차곡차곡 포개져 제 몸의 열기로 서로가 이롭던, 차곡차곡 쌓여 겨우내 태우던 연탄처럼 듣기만 해도 따스한, 우리만의 김치가 우리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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