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처럼 걷고 싶다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에 애도를 표하며 삼가 명복을 빕니다

김영희 | 기사입력 2015/11/25 [08:51]

꽃잎처럼 걷고 싶다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에 애도를 표하며 삼가 명복을 빕니다

김영희 | 입력 : 2015/11/25 [08:51]
▲ 김영희 시인     ©
떠나가는 뒷모습에는 쓸쓸한 아름다움이 있다. 가을의 끝자락이 비에 젖으며 젖으며 떠나간다. 무수한 언어들이 부서져 차분하게 돌아눕는다. 남겨진 발자취마다 열정과 최선이 묻어난다. 발효된 향기가 진중하게 퍼진다. 그 향기에 깨어난 이들이 꽃잎 같은 입을 연다.
잠시 걸어온 나의 날들을 되돌아본다. 어린 시절 흙에서 천진하게 뛰놀던 소녀의 발자국만이 찍혀있다. 시멘트 위의 발자국은 남은 자국도 없고, 지울 것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멘트 위를 더 많이 걷는 것일까. 떨어진 나뭇잎들은 시멘트의 냉대로 갈 길을 못 찾아 우왕좌왕 한다. 끝내는 어느 빗자루에 쓸려 내동댕이쳐지지만 상처나 쓰라린 어느 뿌리를 감싼다. 구멍 뚫린 신발이 긴 숨을 내쉰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마음이 하늘을 담는다.
내 나라를 걷다보면 언제나 순국선열들이 생각난다. 걸으면서 새소리 물소리 하나하나가 다시금 고맙게 느껴진다. 그래서 늘 나무 하나, 흙 한줌, 풀 한 포기까지도 새롭게 느껴진다. 나라를 지키는 건 언제나 진행형이다. 애국이란 어느 특정한 사람만이 하는 게 아닌 국민 모두의 기본 정신이다. 국민모두가 나라사랑하는 마음이 되면 아름답게 발전하는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이 이토록 발전을 이룬 데에는 수많은 희생자들이 있다. 나라가 위태할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 바친 선열과,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학생들도 있다.
4.19 혁명(四一九革命)은 1960년 4월 제1공화국 자유당정권이 이승만을 대통령에 당선시키고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개표조작을 하자 이에 반발하여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일어난 일이다.
충주는 전국에서 네 번째로 충주고, 충주농고<현 국원고>, 충주여고 학생들이 분연히 일어나 4.19혁명의 불을 붙이는 심지가 됐다. 자유민주화를 위해 일어난 충주학생들의 높은 정신을 기리기 위해, 4.19혁명 기념탑 건립이 추진 중이다. 소식을 접한 나는 반갑기 그지없다. 나는 유족은 아니지만 4.19정신계승발전에 동참하고자 4월회의 회원이 되었다. 4월회에서는 4.19혁명 기록물을,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등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충주에도 시민들의 많은 참여로 4.19기념탑이 세워져 4.19정신이 계승 발전되길 기대해본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나라를 위해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 그러므로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이 일구어 놓은 내 나라를 꽃잎처럼 걷고 싶다. 꽃잎처럼 걸어서 어느 곳이고 향기로 다다르고 싶다. 나는 남들처럼 가진 것은 없어도 가진 게 없어 부끄럽지는 않다. 내가 부끄러운 것은 나라를 위해 한 게 없어서이다. 또한 게으름에 겨워 꺼져가는 생명을 보면서도 돕지 못하는 때문이다. 돕기는커녕 남에게 꾸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란 안일함에 빠져있어서이다. 가족에게 행복을 안겨주지 못한 면도 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건강함을 지녔음에도 몸을 사리고 있다. 스물다섯부터 이십 삼년간 직장생활을 하고나니 모든 게 허허로웠던 날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나니 일은 점점 멀어지고 돈 쓸 일은 많아진다. 자녀가 다 컸다고 마음 놓을 일은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연말은 또 다가오고 있다. 부족함을 돌아보니 다 내 탓이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하면서 세월만 간다.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점점 빛나 보인다. 우리는 가끔, 자연인처럼 초심으로 돌아가 따스한 가슴으로 서로를 위로해 나가야 한다. 어느덧 설악산에는 눈이 내렸다는 소식이더니, 며칠간 비가 내렸다. 반백의 아버지 머리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니 쓸쓸한 비가 가슴에도 내린다.
겨울이 오고 눈이 내려도 나는 내 사랑하는 나라를 꽃잎처럼 걸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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