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편지

김영희 | 기사입력 2016/03/22 [08:51]

3월의 편지

김영희 | 입력 : 2016/03/22 [08:51]
▲ 김영희 시인     ©
봄의 침묵이 심상찮아 의아하게 바라보던 숲이었다. 그런데 어느덧 매화가 피어 향기가 가득하고, 개나리가 하루가 다르게 꽃잎을 샐쭉샐쭉 내민다. 나무마다 이른 꽃잎이 눈을 뜨고 여기저기서 꽃소식이다. 얼음이 녹은 개울에는 알에서 깨어난 작은 물고기들이 어미의 보호를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이처럼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거리에는 두꺼운 외투를 입은 사람, 봄을 느끼며 화사하게 멋을 낸 사람, 반팔을 입은 사람 등 여러 모습이다.
나이는 쉽게 느는 것 같지만 매년 오는 봄은 언제나 쉽게 오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봄이 늦을수록 그 환희는 더욱 크다. 자연은 깊이 느끼고 사랑으로 바라볼수록 그 이치를 깨닫게 된다. 봄은 내게 가장 반갑고 즐거운 편지다. 봄의 편지를 읽다보면, 내 안의 계절에도 봄볕이 든다. 그러나 기다리던 봄은 방긋방긋 웃으며 금세 지나간다. 사람의 사는 일이 늘 봄날 같거나 꽃길 같다면 삶의 의미는 어떻게 달라질까.
3월이 꽃눈을 뜨던 어느 날이다. 전화가 와서 받으니 수원에 사는 김연화(금곡초등학교 방과 후 독서논술강사)시인이었다. 그녀는 충주를 사랑하여 자주 들르기도 한다. 그런 그녀가 국어시간에 나의 시 <동심>으로 수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는 학생들과 영상통화를 원했다. 나는 갑작스런 일이지만 반갑게 응했다. 영상통화는 오전 10시와 12시 두 번이었다. 어떤 날은 12시와 2시에 영상통화를 했다. 영상통화가 연결되자 우렁찬 인사와 함께 단체로 <동심>시를 낭독했다. 어떤 학생은 통화중 질문을 했다. 작가선생님은 시를 언제부터 썼는지. 시를 어떻게 하면 잘 지을 수 있는지. 어떻게 동심 시를 짓게 되었는지 또는 –지구라는 그릇에- 라는 표현이 좋다고도 했다. 그렇게 영상통화를 끝낸 뒤였다. 아이들의 시를 읽는 목소리가 계속 울림으로 가득했다. 나는 눈시울이 젖어들고 가슴이 뜨거워져 한 동안 움직여지질 않았다. 티 없이 맑은 아이들의 눈동자와 시를 읽는 고운 입술을 보았기 때문이다. 꿈이 가득한 어린이들의 함성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날 금곡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들려준 시 낭송은 평생 내가 부르게 될 봄의 노래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수업을 했던 김연화 시인이 서울에 오면 부탁할 것도 있고 만나자고 했다. 마침 서울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강남고속터미널에서 만남을 가졌다. 그는 시 수업을 받는 날이라고 했다. 커피숍에서 조용한 곳을 택해 자리에 앉았다. 그녀가 커피와 빵을 시키고 숨을 돌리자 가방에서 커다란 봉투를 꺼냈다. 그 사이 빵과 진한커피가 나왔다. 커피 한 잔을 한 모금 음미하고는 봉투에서 무언가를 한 뭉치 꺼냈다. 그러더니 그게 다 아이들이 보낸 편지라고 했다. 그러더니 자기가 모임 하는 동안, 아이들이 보낸 편지에 답장을 써 달라는 부탁을 했다. 나는 그러기로 하고 탁자를 깨끗이 한 다음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편지 내용이 다 달라 답장도 다 다르게 썼다. 처음에는 한줄 답장으로 모두에게 똑같이 쓰려했으나 성의 없어 보일까봐 일일이 조금씩 다르게 썼다. 편지 중에는, ‘영상통화 중 인터뷰를 했는데요, 작가선생님과 인터뷰를 하게 되어 기뻤어요. 언젠가는 꼭 만나고 싶어요’라는 내용도 있다. 학생들은 사인을 꼭 받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답장을 쓰다 보니 2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났다.
내가 답장에 몰두해 있는 동안 그녀가 모임을 끝내고 왔다. 답장을 써야할 편지는 아직도 수십 장이 남은 상태였다. 늦었으니 저녁을 같이 먹자는 것이었다. 나는 남은 답장을 마무리 할테니 식사하고 오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한사코 같이 가자고 했다. 남은 편지는 집에서 써서 다음에 편지가 또 있으니 그 때 같이 달라고 했다. 나는 마지못해 남은 편지를 담아 그녀를 따라 식당으로 갔다. 그 곳에는 모임을 끝낸 회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에는 지도교수인 이승하교수도 보이고 아는 문인도 몇몇 있었다. 늦은 저녁을 간단하게 끝내고 서둘러 집으로 왔다. 오자마자 다시 편지를 꺼내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조금 저려왔다. 행복했다. 이대로 밤을 새우고 싶었다. 이렇게 행복한 날이 오다니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이렇게 많은 편지를 한 날에 받다니, 이렇게 많은 답장을 쓰게 되다니, 내 생의 처음 맞는 감동과 즐거움이다. 편지를 받고 답장을 쓰는 행복이 이런 것일까. 편지와 함께 3월은 꽃잎다리를 곱게 놓으면서 가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이 답장을 받고 어떨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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