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

박상옥 | 기사입력 2016/08/16 [17:26]

칼국수

박상옥 | 입력 : 2016/08/16 [17:26]
칼국수
 
                            이계상(1929~2014)
 
함지박에 쏟은 가루 은박(銀箔)으로 고와서
어머니 미소와 함께 콩가루도 넣으셨다
두 손목 치대다 말고 아파아파 하시던.
 
박달나무 홍두깨로 모처럼 돕는 동안
우리는 반죽을 떼어 아궁이에 구워먹고
울타리 애호박덩이 채를 썰어 고명했다.
 
여름밤 반딧불 날고 하늘에는 별 총총
마당에 멍석 깔고 한가운데 두레반
사랑을 나눠 먹을 때 동산에 달이 떴다
 
입안이 뜨거울까 아삭 씹는 열무김치
구수한 내음 일어 떠오르는 초가집
어머니 가시었어도 향기 돋아납니다.
 
[박상옥 시인]  동화 같은 시조 속으로 들어가 불과 반세기도 안 되어 사라진 추억을 뒤적입니다. 여름이면 농사지은 밀가루에 벌레가 생겨서, 행낭 별채 아무리 시원한 광에서도 벌레는 생겨서 어머니 함지박에 고운체로 밀가루를 쳐선 엉킨 벌레들을 마당에 휙 뿌릴 때, 그 소리를 용케도 알아듣고 뒷마당에서 더위를 쪼던 닭들이 일제히 내달아 푸드덕푸드덕 난리 나게 별식을 쪼아 먹습니다. 그 유기농 밀가루에 콩가루를 넣고 홍두깨로 보름달처럼 크고 둥글게 밀어서 기름먹인 창호지에 잠시 널어놓았다가 뼘만큼 척척 접어 한결같은 두께로 썰 때, 사각사각 칼질하는 소리 끝으로 나무소반에 놓인 칼국수는 참으로 정갈했습니다. 생일에 뽑아 온 절편 같기도 하고 봄밭에 쟁기로 갈아엎은 텃밭처럼 소담스러웠으니. 끼니마다 열 한명쯤은 기본이고 때에 따라 스무 명이나 되는 식구들이 둘러앉아 후루룩 땀나게 칼국수를 먹던 밥상머리가 그립습니다. 여름밤의 달과 별과 바람이나 반딪불이, 애호박, 열무김치, 오이냉국, 가지냉국, 그대로인데, 동화 같은 시조만 남기고 떠나간 시인처럼 사람살이 다복한 풍경들이 아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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