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해

박상옥 | 기사입력 2016/10/12 [20:46]

안해

박상옥 | 입력 : 2016/10/12 [20:46]
안해

                                    오탁번
 
토박이말 사전에서 어원을 찾아보면
‘아내’는
집 안에 있는 해라서
‘안해’란다
과연 그럴까?
화장실에서 큰거하고 나서
화장지 다 떨어졌을 때
화장지 달라면서
소리쳐 부를 수 있는 사람
생일 선물 안 사줘도
그냥 지나가는
그냥 그런 사람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될
그런 사람인데
집 안에 있는 해라고?
천만의 말씀!
어쩌다 젊은 시절 떠올라
이불 속에서 슬쩍 건드리면
-안 해!
하품 섞어 내뱉는 내 아내!
 
 
*오탁번(1943~): 고려대 교수. 한국시인협회 회장.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1966). 은관문화훈장. 한국문학작가상. 정지용문학상. 
 
▲ 박상옥 <시인>     ©
시인이 쓴 여타의 시들 역시 <안해>처럼 솔직하다. 시인은 유명시인이랍시고 현란한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연륜에서 우러나는 독백을 들여다보면, 한 때 인류대학교수였노라. 하는 위세조차 내려놓고, 그는 이제 뼈 속까지 시인이다. 그는 순수함과 솔직함을 당당하게 내세워,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어떠한 비아냥도 비껴간다. 만천하에 이런 시를 공개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오직 오탁번 시인만 할 수 있다. 그의 시는 지나치게 선정적이지 않으며 엉큼하지 않으니 <감자> <행복> <굴비> <부재중 전화> <개똥참외> 등등 수없이 많은 시 속에서 구수하게 독자를 깨치며 웃음을 건넨다. 시인의 아내는 오늘도 여전히 ‘남의 편만 드는 남편’ 때문에 웃다가 울다가 토라지며 안해! 를 외칠지 모른다. 귀향하여 자연스레 익어가는 시인부부의 삶에 경배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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