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에 대한 최후 변론

신옥주 | 기사입력 2016/11/15 [08:31]

선조에 대한 최후 변론

신옥주 | 입력 : 2016/11/15 [08:31]
▲ 신옥주 주부독서회원     ©
지난 주 모의재판에서 나는 선조의 변호인 역을 맡았다. 개인적으로 조선의 왕 중에서 가장 싫어하는 왕을 꼽자면 그중에 선조가 꼭 들어갔는데, 선생님께서 선조를 변호하라고 하셔서 무척 당황했다. 역지사지를 배우라는 취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좀 너무하다면서 구시렁거리며 준비했다. 그렇지만 조사하면서도 선생님의 숙제에 감탄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선조하면 두 번의 전란이 일어나자마자 백성을 버리고 도망을 간 무능한 왕이며, 최초의 서자 출신이라는 출생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끊임없는 열등감과 자기 비하감이 많은 왕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가 도망간 사실을 미화시키거나 아들인 광해를 믿지 못한 점이나 신하들에게 좌우되는 나약한 성격을 포장하려 하지도 않겠다. 하지만 선조에 대해 조사를 하면서 나도 역시 편협한 사고를 가진 소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참고했던 책으로 조선왕조실록, 징비록, 박시백의 만화, 그리고 이한우의 군주열전이 있는데 특히 이한우의 군주열전을 보며 시야가 넓어졌다. 미흡하지만 선조에 대한 최후변론을 하면서 준비한 원고를 읽어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본 사건에 대한 본 변호인의 의견을 진술하겠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본 변호인은 피고인 선조께서 임진왜란 때 도망을 간 사실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데 선조는 그렇게 어리석기만한 인물은 아닙니다.
여러분, 잠시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왕의 이름을 잠시 떠올려 보십시오. 자 이제 방금 떠올렸던 왕의 이름을 살펴보겠습니다. 조선시대는 한 임금이 세상을 떠나면 중신들이 모여 그의 일생을 평가해 나라에 큰 공이 있을 때는 조를, 덕이 있는 인물이었을 때는 종을 붙였습니다. 의미를 살펴보자면 조가 종보다 약간 위라는 것을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선조 사후 공식 칭호는 ‘선조 소경 정륜 입극 성덕 홍렬 지성 대의 격천 희운 경명 신력 흥공 융업현문 의무 성예 달효 대왕’ 모두 38자입니다. 이렇게 긴 존호를 가진 조선 국왕은 50자 영조를 이어 두 번째이고, 세종대왕도 14자밖에 되지 않습니다. 보통 10자 내외이며, 존호는 누가 기분 내키는대로 붙이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대국의 제왕은 영토를 넓히는데서 최고의 평가를 받지만 소국의 제왕은 영토를 보존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점수를 받아야 합니다. 대국은 정복이 중요하였지만 소국은 늘 침략을 당할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외세의 도움을 받았느냐 아니냐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외국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국가의 중요한 역량중 하나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선조의 스승이던 이황부터 이덕형, 이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성현들이 선조를 가르쳤으며, 선조 때 뛰어난 인물이 가장 많이 나왔다는 역사적 사실도 주목해 주십시오. 실록을 여러 번 보아도 선조는 분명 성공한 국왕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실패한 국왕입니까?
선조대에 임진왜란이 일어난 것은 한마디로 불행이요 불운입니다. 태조, 태종, 세종, 세조때를 제외한다면 언제 일어나도 그에 못지않게 참화를 입었을 것입니다. 그게 마침 선조때 일어난 것입니다. 일본의 침략이 의심되자 조선에서는 김성일과 황윤길을 일본으로 보내 정황을 살피라고 합니다. 여기서 서인 황윤길은 전란 대비를 주장하고, 동인 김성일은 전란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랫동안 전쟁 준비를 하지 않은 조선은 전란 준비가 쉽지 않은 일이었고, 일본에서도 그렇게 쉽게 전쟁의 야욕을 드러냈을 리가 만무합니다. 한양에만 앉아있던 왕이 두 사람의 상반된 의견을 듣고 평소 행적을 생각해 판단 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고찰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아버지 명종 시대는 윤씨 외척들의 세상이었습니다. 유명한 임꺽정의 난도 바로 명종때 일어난 것이고, 역사에 기록되는 굵직한 민란들도 대부분 명종때 일어났습니다. 선조는 바로 그러한 조선 상황을 타개해 붕당의 정치로 바꾼 왕이었습니다. 때문에 선조를 아무것도 못한 왕으로만 간주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임진왜란이 선조때 일어나서 그 정도로 그쳤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한 마리의 사자가 이끄는 백 마리의 양보다 한 마리의 양이 이끄는 백 마리의 사자가 더 훌륭하다고 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인 선조가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뉘우치고 잘 지내고 있는 현 시점에서, 불필요한 처벌로 서로 간에 앙금을 쌓게 하는 것보다는 너그러운 결정을 내리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생각됩니다. 피고인 선조에게 부디 선처를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으로 본 변호인의 최후 변론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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