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전화
박재용
전화가 왔다 전화도 돈 나간다고, 받는 전화도 빨리 끊으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니가 손전화로 전화를 하셨다
“웬일이세요, 전화를 다 하시구” “응 여그 인천 배타는 덴데 내 주민증을 안 가져와서 배를 못타는구먼” “예에 아니, 노인네가 무슨 인천을” “아 노인핵교서 가는 여행인디, 낼 모레 오는 거라 느그한테 야그 안하고 빨리 댕겨올라구 그렸지” “긍께 지금 주민등록증을 안 가져 가셨다구요” “그랴 아침에 텔레비전 우에 나두구 할망구 독촉하는 바람에 그냥 왔지 뭐냐, 여러소리 말고 빨랑 내 주민번호나 불러봐” “알았어요, 전화 다시 할께요”
통화는 끝났다 어디를 가시는 것인지, 것도 모르고, 다시 또 전화가 왔다 (참 급하시기도 하지, 노인네) “야 여그 다 적혀있네 걱정하지 말고 됐다” 하실 말씀만 하시고 끊어진 전화 다시 전화를 하자 “ 아 나 지금 바쁘다 쓸데없이 전화하지 말고 끊어라, 낼 모레 갈테닝께” “아 글쎄 어디 가는 디요, 참” “배 타구 갔다 올껴, 걱정하지 말고 빨리 끊어야” 또 끊어진 전화
*박재용: 충주 출생. 월간문예사조 신인상. 제1회 노동문학상 수상. 사람과 시 회원
엄마랑 전화를 할 때면 곧잘 당신 말씀만 하고 툭 끊으시곤 했다. 전쟁 후의 가난, 엄혹한 세월을 건너 온 이 시대 어른들과의 대화는 전화가 아니라도 종종 불통이라 답답할 때가 있다. 하지만 여기 <끊어진 전화>의 분위기는 은근히 구수하고 빙그레 웃음이 난다.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법한 통화 속엔 당신 말만 하고 끊어버려도 무방한 인정이 깔려 있다. “웬일이세요. 전화를 다 하시구” 세상에 없는 부모님께 전화 받고 픈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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