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가기 전에

강준희 | 기사입력 2007/02/08 [00:00]

가을이 가기 전에

강준희 | 입력 : 2007/02/08 [00:00]

▲ 강준희 중산고 교사     ©

아침 안개 속에 잠긴 은행잎들이 흩날리고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나뭇잎들이 저마다의 마지막 빛깔을 남기고 스러져가고 있다. 추수가 끝난 들녘은 풍요의 여운을 즐기는 듯한 허수아비만이 외로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감잎이 붉게 떨어지고 있는 마당에는 아직도 갈무리 하지 못한 콩을 터는 농부의 마지막 손길이 분주하다. 붉고 노란 낙엽과 단풍들, 그리고 푸른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탐스럽게 매달린 사과 열매의 아름다움으로 온갖 치장을 하던 가을이 이렇게 물러나고 있다.

 
이제 많은 이들의 눈길을 잡던 넉넉한 가을의 풍경은 빈 나뭇가지 뒤로 또 하나의 추억을 남기며 묵묵히 세월은 제 갈 길로 가고 있다. 바람에 뒹구는 낙엽처럼 가슴이 황량해지는 이 늦가을의 서늘함이 쓸쓸함을 더한다.

 
낮과 밤의 기온차가 십 도를 넘으면서 사람들은 또 한 철을 보내는 아쉬움과 힘겨움에 몸살을 한 차례 앓으면서 겨울을 맞이할 것이다. 언제 찾아 왔는지 모르는 고열과 기침으로 멍한 며칠을 넘기면, 차가운 바람과 서리는 어느 새 우리 눈 앞에 다가와 있고, 모두들 또 새로운 마음으로 추위와 외로움을 견디면서, 삶의 보람과 의미를 찾으면서 살아가는 것이리라.

 
바람이 저 나뭇잎들을 다 떨어뜨리기 전에, 이 가을이 가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아직 채 거두지 못한 가을걷이도 해야 하고, 다가올 겨우살이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도 많다. 연탄을 들여놓거나, 보일러에 기름도 채워야 하고, 겨우내 먹을 김장에 들어갈 재료들을 챙겨두어야 하고, 호박이나 무 말린 것들도 챙겨서 통풍이 잘되는 곳에 두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가을이 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은 다가올 추위가 외롭지 않을 따뜻한 사람을 하나 만드는 일이다. 옆구리가 시려오는 이 계절이 다 가기 전에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어깨를 나란히 할 사랑하는 이를 만드는 것이다. 시리고 허전한 마음을 녹여 줄 따뜻한 이를 찾아, 사랑을 고백하고 그 사랑 속에서 둥지를 틀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겨울이, 우리 인생이 외롭지 않은 것이다.

 
아직 여름의 뜨거움과 무성함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기에, 비어가는 들판과 산이 더욱 쓸쓸한 것인지 모른다. 모두 헐벗어 버린 겨울 풍경이 익숙해지면 더 이상 외롭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혼자 견디는 고독보다는 함께 하는 아픔이 더 견디기 쉬운 법이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다 보면, 내가 행복한 건지,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를 만큼 만나고 웃고 다투고 정신없이 살다보면, 어느 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자기 인생의 가장 행복한 추억의 순간 한 가운데에 서 있다는 것을...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보자. 누군가 나로 인해 따뜻해질 사람이 없는지 찾아보자. 누가 나의 상처를 감싸줄 사람이 없는지 눈을 씻고 찾아보자. 평소에 나에게 신호를 보내고, 웃음을 던지던 의미있는 눈짓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잘 알지 못하겠다면 늦은 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에게 편지를 써 보자. 보고싶다고, 사랑한다고 진심을 담아 고백해보자. 아마 편지를 받게 되는 그도 또한 이 황량한 늦가을의 고독에 몸부림치고 있을 것이다.

 
바람이 분다. 낙엽이 다 지고 있다. 서두르자. 올 겨울엔 혼자일 수는 없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존재의 고독을 떨쳐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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