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원역을 찾아 열정을 불사르는 ‘연수동 주민들’

이규홍 대표이사 | 기사입력 2018/01/26 [11:16]

연원역을 찾아 열정을 불사르는 ‘연수동 주민들’

이규홍 대표이사 | 입력 : 2018/01/26 [11:16]

▲ 이규홍 대표이사  

충주의 역사가 주민들에 의해 밝혀지고 또한 유래비와 역사 보존을 위한 조형물을 관이 아닌 민 주도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충주 연수동의 연원역은 의미가 깊다.

연원역은 충주가 물류와 행정의 중심으로 인근지역까지 아우르며 역참의 업무를 총괄하던 곳으로 크게 번성했던 곳이다.

역참이란 조선시대 교통수단으로 쓰이던 말을 관리하고 공무상 말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말을 제공 또는 교환해 주던 곳이다.

이러한 연원역에 대한 근거가 발견된 것은 마을에 작은 다리로 쓰던 돌을 치우고 다시 다리를 놓는 과정에서 연원역에 대한 기록이 있는 비석을 찾아냈고, 서편마을회관 옆에는 강원도와 삼남지방에 수해를 입어 어려운 주민들에게 자신의 녹봉으로 민생을 구휼한 이승렬 연원도 찰방의 유애비를 찾아내면서부터이다.

조선실록에 근거한 연원역의 규모와 찰방의 업무와 행정 연수동 옛 지명에 대한 설명 연원시장의 유래 등 연원역 유래비에 상세히 적어 많은 사람들에게 그 옛날 번성했던 연원역에 대해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연원역은 인마다 물류의 이동이 빈번했던 곳으로 역할의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역에 파견된 찰방이 근무하던 곳으로 역리를 포함한 역민관리와 역마의 보급, 사신접대 등을 하던 곳이다. 이곳은 찰방을 비롯한 역리 34, 지인 17, 사령 10명과 수많은 노비 등 300여명이 넘는 인원과 대마 3, 기마 4, 복마 7필을 관리했던 곳이기도 하다. 연원역에 대한 기념 조형물 설치가 있기까지 큰 공적을 세운 사람은 박대성 전 충주시의회의원이었다. 연원역에 대한 자료를 찾고 사실을 확인하는데 그의 공이 컸던 것이다. 박 의원은 조선시대 실록 등 역사자료를 꼼꼼히 살펴보고 연원역에 대한 기록을 찾아냈고 주민들과 함께 연원역의 근거를 찾아내는데 앞장섰다. 박 의원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확보하고 충주신문을 찾아 충주신문에서 널리 알려줄 것을 요청했고, 충주신문에서는 기꺼이 연원역에 대한 근거와 역사적 사실 등을 신문에 게재하여 충주시민에게 알리는데 협조했다.

연원역의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 박대성 전 시의원이나 연수동 주민들의 노력에 대해 힘찬 박수를 보내고 싶다. 관에서도 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주민 스스로 나서서 내가 사는곳의 역사를 찾아내고 그것을 기념 조형물로 길이 남기고자 함은 연수동 주민들의 자기 동네에 대한 열정에 절로 숙연해지는 마음이다.

더욱이 박대성 의원 및 주민들은 충주시에서 연수동 뒷산을 등산로를 만들면서 그 이름을 잘 모르자 후곡산이라고 잘못된 이름을 지어 놓았던 것을 이곳이 예로부터 뒷목골산이라고 명명했음을 밝혀내 이름을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이처럼 박 의원과 연수동 주민들의 열정은 우리 충주의 옛 이름과 충주의 역사 나아가서는 충주의 맥을 찾아가는데 커다란 공헌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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