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하시는 선생님께

강준희 | 기사입력 2018/02/02 [09:23]

퇴임하시는 선생님께

강준희 | 입력 : 2018/02/02 [09:23]

▲ 강준희 중산고 교사     ©

영하 십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올겨울은 유난히 추워 우리나라가 북극 쪽으로 떠 밀려온 듯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날씨가 추워도 햇볕이 비추는 창안에 있으면 포근했는데, 오늘은 따뜻한 난로 가에 있어도 온몸을 감싸는 이 한기는 동장군의 기세 때문만은 아닙니다. 언제나 함께일 것만 같았던 선생님의 퇴임 소식을 듣고 쓸쓸함이 더해져 느끼는 기운이겠지요. 이별은 아직 실감나지 않아, 슬픔보다도, 언젠가는 저도 평생을 오직 하나밖에 모르고 살았던, 교단에서의 삶을 마감하는 시기를 마주할 것이라는 헛헛한 마음이 들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선생님을 뵈었을 때, 국어선생님이라면 으레 선생님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화한 미소에 조용하면서도 강단진 목소리, 학생들에게 맑은 음성으로 시를 읽어주는데, 듣는 이들에게 절로 감성을 불러일으킬 것 같았습니다. 꼼꼼하게 설명하고, 언제나 열정에 가득한 모습이 천상 선생님의 모습이었습니다. 놀라웠던 것은 십여 년이 지나도록 곁에서 함께 근무하면서, 첫인상을 한결같이 간직하고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뿐 아니라 동료선생님들에게도 늘 같은 모습이셨습니다. 항상 웃는 얼굴로 친절하고 조용조용히 공감해 주셔서 상대방을 언제나 편안하게 해주셨습니다. 저에게는 없는 그 모습을 닮고자 노력했는데, 배운다는 게 참 쉬운 일만은 아닌 것이, 아직도 저는 선생님의 그림자도 쫓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년을 이년 앞두고 퇴임을 하시면서, 젊은 사람들이 저리 일자리를 못 구해서, 결혼도 늦고 있는데 늙은이가 얼른 자리를 비켜주어야지 라고 말씀하시는 걸 듣고 또 한 번 저라면 그리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매학기 초마다, 젊은 기간제 선생님들이 계약기간이 끝나면 또 다른 학교를 찾아 떠나고, 애인이 있고 서른이 훨씬 넘었는데도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하는 처지를 참 안타까워 하셨지요. 그분들을 볼 때마다, 저들이 남고, 내가 떠나야 하는데는 말씀은 하셨지만 정말 명예퇴직 신청을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아침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학생들 만나러 교실에 들어가시곤 했기에, 학생들이 쓴 글 하나하나 열심히 읽고, 회식 자리에서도 학생들 얘기만 하셨기에, 정말 학교생활을 정리하는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어요. 선생님도 서른을 넘긴 자식이 있고, 이 땅의 청춘들이 모두 내 자식 같아서, 물이 흐르며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듯, 그렇게 흘러가는 세대가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 판단하시기까지, 한꺼번에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기까지,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을까요.

 

가르치는 것을 최고의 낙으로 삼고, 목이 터지도록 연강을 해도, 학교가 최고라는 표정으로, 한 번도 힘겨워하지 않으셨던 선생님. 연세가 많다고 뒤로 빠지지 않고, 버거운 업무를 맡으셔도 피하지 않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늘 나도 함께 할게 라고 나서주셔서 얼마나 고마웠는지요.

 

아직도 충분히 열정이 넘침에도, 딱히 퇴임 후의 계획이 없음에도, 학교를 떠나 새로운 출발을 기약하는 선생님께, 우리가 아쉽다고 잡을 수만은 없는 일이기에 새 출발을 축복합니다. 그동안 무거웠던 짐들 다 내려놓으시고, 당분간은 딴 생각하지 않고 푹 쉬시길⋯ 해외가 아니더라도 통영이나 여수 저 남쪽 어디 먼 곳이라도 떠나 학교생각, 아이들 얼굴 잊을 때쯤 돌아오셔서 새 출발하세요. 봉사도 다니시고, 힘닿는 대로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도 걸으시고,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한다는 남미 마추피추나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이나, 그런 데라도 다녀오셔서, 다음에 뵐 때는 여행이야기 많이 해주세요. 이제 곧 입춘입니다. 추위도 한풀 꺾이면 새봄이 오겠지요. 언제나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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