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없는 피란

김영희 | 기사입력 2018/03/13 [08:46]

전쟁 없는 피란

김영희 | 입력 : 2018/03/13 [08:46]

▲ 김영희 시인     ©

그 해 나는 아홉 살이었다. 전국에서 우리 집으로 모여든 사람들의 집회는 광목 천막을 치고 몇날 며칠 이어졌다. 우리 집 텃밭에서 집회가 끝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서다. 아버지는 집과 논밭을 팔아서 산골로 들어가 살 계획을 하였다. 어머니는 반대했지만 아버지는 계속 시도를 했다. 그런 낌새를 알아챈 할머니는 눈물로 아버지를 만류하였지만 아버지는 완강했다. 날은 한없이 뜨겁고 마을의 논밭에서는 일하는 모습이 한창이었다.

 

그날 밤 나는 어른들이 말하는 천국을 상상하며 잠이 들었다. 그러자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왔다. 나는 그 동아줄을 타고 하늘에 올라가는 꿈을 꾸었다. 잠에서 깨어 꿈 이야기를 하자 아버지는 더 밝은 표정이 되었다.

 

다음 날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우리를 데리고 충주아카데미 극장엘 갔다. ‘소돔과 고모라’라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다. 소돔과 고모라는 아브라함 시대에 나오는 팔레스티나의 악과 타락을 상징하는 두 도시다. 영화에서 롯은 히브리인들을 데리고 사막을 지나 기름진 땅으로 간다. 그들이 점점 정착해가자 헬라 민족이 쳐들어와 불태우고 소동을 벌인다. 결국 롯은 여왕의 동생과 결투 끝에 그 동생을 죽이고 감옥에서 최후의 날을 맞이하게 된다. 이 때 롯에게 목자들을 데리고 성을 떠나라는 신의 계시가 들리면서, 수갑이 풀리고 감옥 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난다. 신은 의인 열 명만 있어도 멸하지 않으리라 약속하지만, 의인 열 명이 없어 불과 유황으로 심판하게 된다. 심판의 장면을 돌아보지 말라는 신의 마지막 명령이 있은 후에, 롯은 이를 믿는 이들과 성을 빠져 나온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심판의 장면을 돌아보다 온 몸이 소금 기둥이 된다. 소금기둥이 되는 그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두 번째 여름방학을 맞이했다.

 

아버지는 성경대로 살기 위해 산골로 들어갈 준비를 서둘렀다. 아버지는 세상이 점점 타락해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래서 세상의 부귀영화를 버리고 가족만이라도 구원하여 천국으로 인도하기를 꿈꾸었다. 어머니도 끝내는 아버지를 따라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가방 몇 개와 보따리였다. 드디어 우리 5남매는 부모님을 따라 집을 나섰다. 집과 논밭을 두고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한참을 걷다가 버스를 타고 또 걸었다. 수안보에서 내려 온천을 하고 얼마나 걸었는지 모른다. 어머니는 막내동생을 업고 머리에는 짐을 이고 손에는 보따리를 들었다. 아버지 역시 들고 지고 뙤약볕 길을 숨이 목에 차도록 걸었다. 어린 나는 걷다가 다리가 아프고 힘이 들어 업어달라고 꾀를 부렸다. 그 때 일행이 있었는지 누군가 나를 업어서 한참을 힘들지 않게 갔다. 얼마를 걸었는지 고사리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나는 그곳이 아버지가 원하는 천국인 줄 알았다. 처음으로 실망한 그곳에서 며칠 보내고 다시 걷다보니 산속에 으리으리한 삼관문이 우리를 맞이했다. 가는 내내 오르막길이었는데 오랜만에 내리막길이 보였다. 삼관문이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인 것 같았다. 깊은 산속에 이렇게 큰 문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삼관문을 넘어 동화원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보이는 건 산이고 나무였다. 그곳에서 첫날밤을 맞이했다. 불빛 하나 없는 칠흑 같은 밤, 알 수 없는 산짐승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새소리마저 늑대소리처럼 들려왔다. 하늘만이 수많은 별들로 반짝였다. 산의 싱그러운 향기가 무서움을 다독였다. 나의 두 눈은 어둠을 뚫고 별에게로 달려갔다. 그래도 밤하늘은 동화책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인기척이 서서히 들리고 찬송가도 들려왔다. 새벽 4시, 우리 가족도 일어나 세수하고 옷을 단정히 입고 숲이 우거진 산길을 따라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갔다. 건물 없는 예배당이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예배를 드렸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따라했다. 어른들은 세상이 타락해지니 말세라는 표현을 자주 했다. 그렇게 영화 같은 첫날이 밝았다. 밤의 기운은 떠오르는 해와 함께 사라졌다. 햇살에 반짝이는 초록 잎 사이로 맑은 물소리와 고운새소리가 기분 좋게 했다. 그렇게 전쟁 없는 피란 생활은 한 달을 넘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날부터 나는 이름 모를 산속을 걷는 것처럼 살아간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충주 호암직동 향기누리봉사회, 홀몸노인 30가구에 밑반찬 지원
1/10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안내 구독신청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