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신옥주 | 기사입력 2018/04/09 [18:45]

소년이 온다

신옥주 | 입력 : 2018/04/09 [18:45]

▲ 신옥주 주부독서회원    

작가 한강은 정말 사람을 여러 번 놀라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맨부커상을 받는 작가가 이름도 모르던 작가라는 것을 알고 아직도 읽지 못한 수많은 책들 속에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꺼냈었다. 채식주의자를 읽을 때는 책 분위기가 너무 우울하고 어두워 다다가기 어려웠다. 소년이 온다는 책 표지가 까만 바탕에 안개꽃이 가득하여 혹시 소나기같은 내용인가 짐작하며 읽었다. 책을 펼치고 두 번째 쪽으로 가는 순간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5·18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내용이며, 독자들에게 감정을 일방적으로 전달하지 않고 공감할 수 있도록 쉽게 읽히면서도 분명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아주 잘 쓴 글이었다.

 

대체로 웬만한 책은 두세 번 정도 읽는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두 번 이상 읽으면 안된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읽는 내내 감정 소모가 너무 심하고 감정 이입이 격하여 일상생활에도 지장을 줄 정도였다. 첫 번째 이 책을 읽을 때는 5.18을 어린 동호의 시선으로 따라가며 읽었다. 줄거리를 파악한 뒤에 행간을 곱씹으며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우울함과 분함과 화남이 번갈아 나타나 주체할 수가 없었다.

 

소설은 총 6장으로 구성되었으며, 각 장마다 화자가 다르다. 동호의 독백, 그리고 동호의 친구, 은숙의 이야기, 김진수의 이야기, 선주의 이야기, 동호 어머니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동호가 등장하며 모두 동호와 얽혀있는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다들 고등학생인줄 알지만 실제로는 중학생인 어린 학생인 동호는 친구 정대와 5.18 당시 우연히 현장에 있게 되었다. 15살에 불과한 동호나 정대, 그리고 주변의 인물들이 모두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다. 가족이 총에 맞아서, 혹은 도와달라는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아서, 혹은 피 흘리며 쓰러지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어서 그들을 도와주다가 역사라는 태풍에 휘말린 것이다. 우리가 짐작하지도 못할 고통을 받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또 다른 고통과 마주하며 살아야 했다. 누구도 모르는 곳에서 흘리는 피, 그들의 정신을 옭아매는 고통을 어느 누가 알아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잡혀간 사람들을 고문하고 인간이하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굶주림이라는 방법을 쓰던 고문관들. ‘순간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원한 게 무엇이었는지.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들이 너희들이란 걸, 우리가 증명해주겠다.

 

내가 이런 상황이라도 과연 애국가를 부르고 숭고한 정신 어쩌고를 외칠 수 있을까. 절대 그러지 못할 겁쟁이임을 나는 안다. 그래서 이들이 얼마나 힘겹게 정신을 지탱했을지도 헤아린다. 나는 못하는 일이기에. ​

 

​ 이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죽지 않았음을 죄책감으로, 더 큰 투쟁을 하지 않았기에 더 큰 아픔을 속으로 삼키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우리는 늘 자신있게 남들에게 말한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라고. 정작 자신은 그러지 못하면서 말이다. 누군가에게 혼자 고고한 척 하지 말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깨어있는 척 주접떨지 말라고 힐난하는 소리도 들었다. 전부 맞는 말이다. 그들의 희생으로 현재를 잘 살고 있는 우리는 말로만 흰 소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그들의 아픔이 희석될 때 기억하라고 잊지말라고 울부짖는 책이 있음에 감사한다. 더불어 어려운 주제를, 암울한 고통을, 담담히 강요하지 않는 방법으로 쓴 작가에게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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