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강 이강년 선생 유고 문화재 지정을 환영한다

이규홍 대표이사 | 기사입력 2018/04/11 [20:29]

운강 이강년 선생 유고 문화재 지정을 환영한다

이규홍 대표이사 | 입력 : 2018/04/11 [20:29]

▲ 이규홍 대표이사     ©

운강 이강년 선생의 글과 의병 활동기록인 운강 선생 유고 및 부록을 등록 문화재로 지정 예고 한 것은 잘한 일이다.

 

우리 선조들에 대한 사상과 항일 의병에 대한 기록이 담긴 기록물을 문화재로 보존하는 것은 장차 미래 세대들에게 나라를 위한 일이 무엇이며 우리 민족에게 국가란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는가? 나아가서는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분연이 일어나 왜적과 싸운 우리의 선비 정신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를 상기 시킬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운강 이강년 선생은 문경에서 태어났지만 일본이 명성왕후를 시해하고 단발령을 내리는 등 악행이 거듭되자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켜 충주성 싸움에 합류하게 된다.

 

이후 제천에서 창의하여 충주성 공략에 나섰던 의암 유인석 선생의 문인으로 합류 함께 충주, 제천에서 활약하였으나 유인석 부대가 일본군에 패하자 유인석 선생과 함께 요동으로 건너가 3년간 활동하고 돌아와 단양 금제동에서 학문에 전념하였으나 1907년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고종이 강제 퇴위하고 정미칠 조약으로 한국 군대를 해산하자 단양 영춘에서 다시 의병을 일으켜 마침 원주 진위대를 이끌고 봉기한 민긍호 부대와 합세하여 충주성을 공격하였다.

 

이른바 정미의병이었던 것이다. 선생은 1880년 무과에 급제해 용양위부사과로서 선전관까지 지냈던 무장으로서 의병을 창의해 많은 전공을 세웠고 전국의병들이 서울로 진격하기 위해 양주에 집결, 13도 연합의병 부대를 편성할 때 호서창의대장으로 참여하였으나 서울 진격이 미수에 그치자 휘하 장병들을 독려하여 용소동전투, 갈기동전투, 백담사전투, 안동서벽전투 등에서 빛나는 승전을 거두었다.

 

그러나 1908년 청풍 작성에서 벌어진 결전에서 총상을 입고 일본군에게 붙잡혀 이해 9월 교수형으로 순국했던 인물이다.

 

운강 이강년 선생 휘하에서 예하대장으로 활동했던 백남규 선생 역시 충주 출신이었다.

 

의암 유인석 선생이나 운강 이강년 선생이 창의한곳은 제천과 문경이지만 결국 싸움의 격전지는 충주였고 충주 주변전투에서 활약했던 의병대장들이다.

 

의암 유인석 선생의 자손들이 현재 충주시 엄정면 신만리 도룡부락에 살고 있고 운강 선생 유고 및 부록을 제천 의병전시관에 기증한 것도 의암 선생의 증손자인 고 유연수씨다.

 

유연수씨는 어릴적 증조부를 따라 만주에서 살았으나 해방 후 엄정면 도룡 부락에서 살다 몇 년 전 82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엄정면에는 그의 두 동생과 아들들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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