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 다루기

osi | 기사입력 2007/02/08 [00:00]

신랑 다루기

osi | 입력 : 2007/02/08 [00:00]
나무에 신랑이 거꾸로 매달려 있다.
신랑을 다루는 사람들은 꼼꼼히 준비한 듯하다. 하얀 광목으로 두 다리를 모아 묶은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나무에 높이 매달 수 있도록 길고 튼튼하게 광목을 이용해 끈을 만든 솜씨 또한 범상치 않았으며 공원에 있는 나무 중 가장 크고 든든한 나무를 단번에 택한 것을 보니 이미 여러 번 신랑을 다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새신랑이 두 손을 묶인 채 오토바이에 끌려서 공원에 들어 올 때부터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지만 꽃처럼 예쁜 신부가 승용차의 뒤 트렁크에서 살포시 내리자 사람들은 그들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어허, 새신랑 다루네.” “제대로 준비했구먼.” “옛 생각나네. 그려.”
노년의 어르신들은 입가에 미소를 띄우고 삼삼오오 모여 흔하지 않은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고 가족과 함께 나온 어린이들도 호기심 반 즐거움 반으로 이들을 주목하고 있었다.
그러나 거꾸로 매달린 새신랑은 끈을 당기면 높이 매달리고 끈을 늦추면 땅에 머리가 닿을 듯 내려와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신랑은 비명을 지르며 내려 달라고 애걸 복걸하였다. 그저 가벼운 장난으로 여겼던 신랑 다루기가 너무 지나치다 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실수라도 해서 생각보다 길게 끈을 늦추어지거나 놓쳐버리면 목에 이상이 생길 것이 틀림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다가가 보니 벗겨진 윗몸과 얼굴은 온통 낙서 투성이이고 얼굴과 목은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듯 힘줄이 솟아있었다. 높이 매달렸다 내려뜨릴 때마다 공포에 떠는 신랑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짓궂은 신랑 친구들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본다는 것에 재미를 느낀 듯 점점 더 심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기진맥진한 신랑을 맨땅에 눕히고 첫날밤의 행위를 요구하였고 신랑과 신부가 거절하면 가차없이 빨래 방망이로 신랑의 발바닥을 가격하였다.
그저 재미로 여기고 구경하였던 사람들은 낯뜨거운 장면에 눈살을 찌푸리며 하나 둘 떠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술에 취한 신랑친구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소주를 병 채 마셔가며 멈출 줄을 몰랐다.
“아니, 어쩜 저럴 수가 있지? 어르신도 있고 어린아이들도 있는데 무슨 짓들이야?”
젊은 엄마의 불만이 표출되자 여기저기서 그들을 나무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쉽사리 그들 앞에 나서지를 못하고 있었다.
“지금이 어느 시기인데 저 짓들이야 말세다 말세.” “나무라면 오히려 봉변만 당하니 그냥 피하는 게 상수지 뭐.” “신랑친구들이 영 배워먹지 못했군.”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은 분노하면서도 그 자리를 피하기에 급급하였다.
급기야 청년들의 어머니세대인 중년의 여인들이 나서서 연세 많은 할머니 한 분을 대동하고 그들의 행동을 저지하였다. 모두들 무슨 봉변이나 당할까봐 걱정스럽게 지켜보았다. 그런데 의외였다. 그들은 순순히 할머니의 말씀에 따랐고 정중하게 사과까지 하였다. 봉변당할까봐 몸을 사리느라 진작 주의를 주지 못한 부끄러움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으리라.
신랑다루기는 동상례(東床禮)라고 하는데 오래 전부터 혼례의 한 풍습으로 전해온 우리의 놀이이다. 신랑이 처가에 오면 이웃과 친척들이 모여 잔치를 열고 반기었는데 일종의 놀이문화인 신랑 다루기를 통해 신랑의 재치와 융통성을 가늠하고 신랑다루기를 하는 동안 신랑과 처가 식구들 그리고 친척들이 서로 허물없는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또 마른 명태로 신랑의 발바닥을 때리는 것은 발바닥에 있는 혈을 지압하여 결혼식 내내 쌓인 피로를 풀어주고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주는 지혜로움에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요즘은 동상례의 원래의 의미는 퇴색된 채 엉뚱하게 돈을 요구하는 도구로 이용되고 있기도 하다. 결혼식의 절차를 밟느라 지쳐있는 신랑을 무리하게 나무에 높이 매달거나 차 뒤에 매달아놓고 뜀박질을 시키기도 하고 술을 억지로 마시게 해 위험지경에 빠트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신랑다루기는 분위기 조성이지 결코 신랑을 괴롭히는 고약한 행위가 아닌데 잘못된 관행으로 변형되고 있는 것이다.
문득 옛날이 생각난다. 새신랑인 남편과 함께 친정에 가니 친척 오빠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두 다리를 묶어 올리고 마른 명태로 발바닥을 치며 우리동생한테 잘 하라고 다짐도 받고 신부는 신랑에게 입맞춤하라며 장난도 쳤다. 발바닥을 맞을 때마다 남편은 죽을 듯이 소리를 질렀고 친정어머니는 어쩔 줄 모르며 사위를 감싸안기 바빴다.
그날이후 남편은 친척오빠들과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으니 신랑다루기는 친교의 장임에는 틀림이 없다. 흰머리 가득한 오빠들에게 남편 한번 다시 다루어 달라고 부탁할까보다. 그 날 평생 잘하라는 오빠들의 엄포가 어느새 약발이 떨어졌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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