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말없이 와서 잠시 머물다 간다고 예고도 없이 그렇게 며칠을 서성대더니 산자락엔 녹음이 점점 짙어지는데 봄날은 간곳없고, 어스름 저녁 무렵 가로수 산딸나무는 달밤에 더욱 하얗게 빛을 낸다.
이런 날이 내게 올 거라 생각지도 않았는데 덤으로 사는 세상이라 혹시나 기대를 안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속깊이에서 언제나 간절히 소원했던 그런 일들이 요즘 하나 둘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해 본다. 허리춤 졸라매고 아이들 키우면서 나도 언젠가는 돈 벌어서 내 어버이한테 효도도 하고 용돈도 드릴 그런 날 오겠지 마음속에 묻어 둔 채로 우리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 가끔은 그렇게 살아온 세월 앞에서 용기를 내야 할 때가 있다. 바람은 그저 바람 일 뿐 용기가 없다면 소용없다는 것도 안다. 어떤 일이든 처음 실천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그리 어렵지 않음도 안다. 내 삶의 무게가 더러는 가벼울 때도 있고, 때에 따라 무게를 느낄 때도 있다. 아주 가끔은 지나온 세월을 한 번씩 뒤 돌아 본다. 후회보다는 만족하다는 마음이 들 때는 내 삶의 무게는 가볍다. 하지만 뭔가 아쉽고 후회스럽게 여겨질 때면 삶의 무게가 한없이 무겁게 여겨진다. 어쩌다 한번이 두 번이 될 수 있고 두 번이 세 번 네 번 반복할 수 있기에 작은 용기를 내어 본다.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이다음에 시간나면 해야지 하지만 그 또한 바람일 뿐인 것을.... 해서 마음을 바꿔보기로 했다.
아들딸 가리지 않고 둘도 아닌 셋을 키우다 보니 웃는 날이 더 많다. 그런 날들의 연속인 것을 이제야 또 알게 된다. 젊어서 부러울 것 없고, 무서울 것 없는 천하장사처럼 살아오신 내 어버이처럼 우리내도 그렇게 살았다. 그것이 최선이고 정답인줄 알았기에. 어느새 내 아이들 삶속에 내 모습 보인다. 물려줄 재산은 없어도 삶의 지혜가 커다란 재산이 되리라 믿는다. 내 부모는 언제나 젊고 당당한 내 울타리인줄 알았는데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연로하신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와 눈을 아프게 한다. 이런 날이 내게 올 거라 생각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내 눈에 보이는 내 어버이의 모습처럼 언젠가는 내 모습은 내 아이들한테는 그렇게 비춰지지 않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당신이 겪어온 세월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답습하듯 살아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니 어느새 내 아이들도 그 길을 열심히 가고 있다. 그 모습을 들어다 보는 것만으로도 대견스럽고 행복하다. 내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했었던 추억들이 내 삶에 버팀목이 되어 주었듯이 지나온 삶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빗나간 삶이 아닌 것에 감사하며 스스로 칭찬을 해 본다. 그런 날들이 내 앞에 있음에 더 없이 고맙고 감사하다. 작은 것 하나에도 소중함과 만족함을 느낄 때 이것이 진정한 삶이 아닌가 싶다. <저작권자 ⓒ 충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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