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먹은 소녀

김영희 | 기사입력 2018/06/06 [09:05]

모래 먹은 소녀

김영희 | 입력 : 2018/06/06 [09:05]

▲ 김영희 시인     ©

점점 봄가을은 짧아지고 여름 겨울은 길어지는 느낌이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봄날의 꽃들이 앞 다퉈 피고 진다. 어느덧 밤꽃 향기가 꿀 냄새를 풍기는데 한여름 같은 더위가 느껴진다.

 

내가 자란 집 앞에는 도랑이 있다. 또한 마을에는 더 넓게 흐르는 개울이 있다. 그 물은 1978년에 착공한 화곡저수지에서 흐르는데 지금도 농수로 쓰고 있다. 화곡저수지가 생기기 전에는 소류지라는 작은 저수지가 있었다. 소류지는 1960년대에 만든 것으로 화곡리 배나무골과 갈골에서 흐르는 물을 저장한 물이다. 그 당시 농사철에 가뭄이 들면 물이 부족해 마을 주민들이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독약품에 근무하던 김구환씨가 고향을 걱정하며 쌀 100가마니를 마을에 기부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장을 보시던 남창우 어르신이 기부 받은 쌀로 주민과 힘을 합쳐 작은 저수지인 소류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가끔 남자들은 소류지 밑으로 흐르는 농수로에서 뱀장어를 잡았다. 뱀장어가 많았었는지 그물을 물에 넣었다 건지면 커다란 뱀장어가 여러 마리 잡혔다. 나는 그게 물뱀인줄 알고 징그러워했다.

 

그 시절에는 물소리도 맑고 매미소리도 맑고 바람소리도 맑았다. 어릴 때는 개울물이 모래 위에 유리알처럼 흘렀다. 소류지와 동막골에서 흐르는 물이었다. 한 번은 소류지에서 친구들과 수영을 하다가 죽다 살아난 적이 있다. 그날부터 소류지는 무서워 못가고 여우내 개울에서 놀며 자랐다. 우리는 여름이 되면 개울에서 놀았다. 맑은 물가에는 바닷가처럼 하얀 모래가 반짝였다. 실컷 놀다가 몸이 선선해지면 작은 바위에 나와 쨍쨍 내려쬐는 햇볕에 몸을 쪼이고 다시 들어가 놀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때가 지나는 줄도 모르고 놀았다. 잠시 몸을 말리며 따끈따끈한 바위에 앉아 있다가였다. 나는 반짝이는 부드러운 모래를 한 움큼 손에 쥐었다. 그리고는 한 입에 털어 넣었다. 따듯한 모래를 입안에서 씹듯이 오물거렸다. 오르르 오르르 한 것이 볶은 참깨 같았다. 맛은 달짝지근하고 고소하기까지 했다. 나는 다시 하얀 모래를 한 움큼 또 집어 먹었다. 모래가 그렇게 맛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그런 은은한 맛은 처음이었다. 꼭꼭 씹은 것이 아니라 대충 오물거리다 삼켜 버린 것이다. 저만큼 있던 친구가 놀다가 눈이 동그래져서 나를 바라보았다. 모래를 먹어서인지 배고픈 줄도 모르고 개울에서 해가 서산에 기울도록 놀다가 집으로 왔다.

 

텃밭에서 서너 개의 토마토를 따 먹다보니 라디오에서 ‘어젯밤 꿈속에 나는 나는 날개 달고’가 나왔다. 나는 신나게 따라 불렀다. 그러자 어머니가 무슨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었나 하고 물었지만, 나는 모래를 맛있게 먹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 후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평소에 모래를 먹는다는 상상은 한 번도 없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알 수가 없다. 누가 모래를 먹어보라고 한 적도 없고, 먹지 말라고 한 적도 없다. 스스로 아무런 의심 없이 딱 한 번 모래를 먹은 후 다시는 먹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먹은 모래는 아무 탈 없이 지나갔다. 그 일은 부모님이 모르는 생의 첫 번째 비밀이 되었다. 두 번 째 비밀은 소류지에서 친구들과 수영하다 죽다 살아난 일이다. 이렇듯 어린 나이에도 위험한 비밀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 때 먹은 모래가 소화가 된 것인지, 소화가 될 수 있는 것인지 늘 의아했다. 모래는 내 몸에 남아 있을지, 아니면 다 빠져나간 것인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나 혼자만의 비밀을 간직한 채 지금까지 살아왔지만 모래 먹은 일은 잊은 적이 없다. 지금 그 개울에는 모래는 모두 사라지고 잡풀만 우거졌지만 개울을 지날 때마다 어린 날 맛있게 먹었던 모래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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