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지와 아이

박상옥 | 기사입력 2018/08/16 [14:50]

송아지와 아이

박상옥 | 입력 : 2018/08/16 [14:50]

[특집] 권태응 탄생 100주년 대표 시 50편

 

 

송아지와 아이

 

                    권태응

 

송아지 몰고 오다가

고삐를 놓쳤지요.

 

송아지 따라오고

아이가 쫒아오고,

누가 먼저 집에 오나

뜀뛰기 내기지요.

 

누가 이길까 겅중겅중

누가 이길까 타닥타닥.

 

송아지는 오다말고 풀을 뜯고

아이는 웃으면서 헐레벌떡.

 

 

*권태응(1918~ 1951) 충주출신 시인이며 독립운동가

 

 

▲ 박상옥 (사)한국문인협회 충주지부장     ©

친구는 소와 놀았습니다. 새 아빠가 무서워 동생들 돌보고 가사를 돕느라 자주 학교를 빠지던 친구는 소 풀 뜯기는 일을 했습니다. 고삐 밧줄을 길게 묶어 놓고 소가 풀을 뜯는 동안, 책을 읽거나 줄넘기를 하거나 땅바닥에 줄을 긋고 사방치를 하는 모습인데, 당시 저는 멀리 친구모습을 지나칠 뿐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그 친구가 어느 날 발목에 고삐밧줄을 묶고는 딴 일에 정신을 팔았던가봅니다. 그 날 무슨 일인지 소가 상거름 골짜기에서 마을을 향해 내달렸는데, 발목이 묶인 친구를 밧줄 끝에 매단 채 내달렸던 것입니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습니다. 다행이 목숨에는 이상이 없는데 가랑이가 다쳤다는 소식이 들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네는 이사를 갔습니다. 소로 인해 다친 친구는 지금도 가끔 우리들 이야기에 회자되곤 합니다. 허물없이 지난 얘기를 주고받는 어린 시절 친구들 틈에서 눈빛이 유난히 영롱했던 그 여자아이를 만나고 싶습니다.

 

60~7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에서 소가 있으면 부자였습니다. 소가 송아지를 낳으면 집안에 경사라 여겼습니다. 여물에 콩이나 싸라기를 둠뿍 넣어 소를 극진히 대접 해주었습니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저도, 한 두 번 소 끌고 오라는 심부름을 할라치면, 모기에 물리는 그 시간이 무척이나 싫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듯 소중한 소였는데 이제는 트랙터나 경운기 사용이 늘면서 농촌에서 소의 역할은 사라졌습니다. 채 100년도 되지 않아서 ‘송아지와 아이’라는 풍속도가 참으로 아련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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