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쫓아낸 여자

김영희 | 기사입력 2018/08/29 [08:15]

집이 쫓아낸 여자

김영희 | 입력 : 2018/08/29 [08:15]

▲ 김영희 시인     ©

올 여름은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푹푹 찌는 폭염이더니, 처서가 지난 8월 마지막 주는 가을장마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름더위가 40도를 웃돌 정도였어도 밭곡은 쉼 없이 견디며 알알이 익어간다. 잔풀들도 아무리 뜨거워도 저마다 약한 뿌리를 내리고, 보란 듯이 자라서 꽃을 피우고 씨를 맺는다. 숲은 서로 부채질 해주며 낮에는 낮은 이들의 그늘이 되어 준다. 밤에는 달빛에 얼굴을 펴고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우러러 꿈을 꾼다.

 

나는 그동안 선풍기도 틀지 않고 여름을 났다. 그러나 올 여름은 다르다. 집에 있으면 한증막처럼 옷이 흠뻑흠뻑 젖을 정도로 땀이 난다. 어지러움이 일기도 한다. 수돗물은 데우지 않아도 미지근하여 샤워를 해도 그 때뿐이다.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해 책을 읽는다. 그러나 오래 견디지 못하고 몇 번씩 마당에 나와 바람을 쐬게 된다. 무더운 밤이지만 자연의 바람은 닿는 느낌이 좋다. 그러다보니 밤하늘을 자주 올려다보게 되는 것이다. 별을 보다보니 남쪽 하늘의 작은 별들이 유난히 반짝인다. 아무리 쳐다보아도 어릴 때 자주 보이던 별똥별은 보이지 않는다. 어디선가 간간이 색바람이 느껴지게 불어온다. 자연은 가깝거나 멀거나 마주할수록 알 수 없는 힘이 생긴다. 새털이 닿는 것처럼 발걸음을 옮기는데, 더운 밤은 서서히 귀뚜라미 소리를 불러들인다. 귀뚜라미 소리가 에어컨 바람처럼 시원하게 느껴진다. 웬만한 더위는 즐기는 편이지만 올해는 견디는 정도다. 집마저도 더위를 먹어서인지 자주 나를 토해낸다. 집을 자주 비우다보니 집이 화를 내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집이 쫓아낸 나는 갈 곳이 없다. 그래서 친구가 다니는 집근처 교회로 피서를 갈 정도였다. 밤이 오면 빨리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새벽 4시가 넘으면 일어나 준비하고 책을 들고 밖으로 나온다. 환하게 켜진 가로등은 밝아오는 아침을 마중하듯 서 있다. 아무리 밝았던 가로등도 아침 해가 밝아오면 저절로 꼬리를 내린다. 집 뒤 도랑가 돌에 앉아 책을 읽다보면 계명산을 딛고 해가 뜬다. 해는 뜨면서 자꾸만 오른쪽으로 간다. 떠오른 해가 아파트에 가려지고 한 시간 후면 아파트 한 동을 지나 다시 눈부시다. 이제는 해에게 쫓겨 다시 집으로 들어간다. 집은 주인의 얼굴이 어사무사한지 나를 낯설어한다. 그런 집은 자꾸만 나를 토해낸다. 집에서 나온 나는 마트나 도서관에서 잠간씩 몸을 식힌다. 그러다보면 온도차가 심해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다시 나와 지인의 가게로 들어선다. 바쁘던 손길이 나를 보자 반긴다. 나는 시원한 에어컨 앞에서 그녀의 일을 잠시 거들어본다. 오히려 더위가 느껴지지 않는다. 더위를 이기는 방법은 바로 일이 아닐까 싶다. 시원한 곳에서 일을 하면 더위도 이기고 생활의 활력도 찾을 것이다. 집이 나에게, 이제 그만 게으름 접고 일하라고 쫓아내는 것은 아닐까. 나의 게으름이 부끄러워진다. 부지런하게 살았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결혼 초부터 막내며느리인 나는 시부모와 함께 살면서 엉덩이 붙일 새 없이, 군살 하나 없이 살았다. 두 아이 대학 마칠 때까지 열심히 일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다니던 회사도 그만 두고 안 버는 만큼 적게 쓰며 살아가고 있다. 일만 하다 생을 마치면 한 번 뿐인 삶이 너무 허전할 것 같았다. 그래서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세상을 두루 다녀보고 싶었다. 그것은 나 스스로를 위로하는 선택이었다. 내가 선택한 길을 걷다보니 일의 소중함을 더 깨닫게 된다. 일을 열심히 할 때는 오히려 몰랐다. 그러나 일을 놓고 일을 생각하니 일이란 가장 철학적인 삶의 가치다. 일은 건전한 정신을 키운다. 그래서인지 점점 어느 일이고 미치고 싶다. 집이 나를 몰라볼 정도로 바쁜척하고 살지만 나는 사막과 같은 시간을 걷고 있다. 사막과 같은 시간에 비가 내리고 모래가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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