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한 정신력을 이어받아 충주 발전 초석으로 삼자

이규홍 대표이사 | 기사입력 2018/11/01 [09:28]

강인한 정신력을 이어받아 충주 발전 초석으로 삼자

이규홍 대표이사 | 입력 : 2018/11/01 [09:28]

▲ 이규홍 대표이사     ©

10월 26일 충주 계명산과 금봉산(남산) 사이에 있는 마즈막재에서는 대몽항쟁용사 위령제 및 김윤후 장군 추모제를 충주신문 주관으로 제례를 봉행했다. 비가 오고 날씨가 을씨년스러워 많은 참반 객이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충주신문에서 벌써 20여년을 이어오고 있는 중요한 행사이다.

 

우리가 대몽항쟁을 주목하고 있는 것은 김윤후 장군의 탁월한 지도력도 매우 빛나는 것이지만 몽고의 9번 침략 중에서 8번을 승리로 이끌어낸 충주인들의 강인한 정신력이 더욱 빛났던 것으로 충주사람들은 대몽항쟁의 역사적 실체로도 자긍심을 갖기에 충분한 것이다.

 

당시 몽고가 어떠한 나라였던가? 아시아 대륙은 물론 멀리 천산(알프스산맥)을 넘어 유럽까지 점령하였던 세계 최강의 군대를 보유한 나라이다. 이러한 나라와 대적하여 1차 침입 시 지광수가 이끄는 노군이 이를 격퇴하였고 5차 침입 시 충주 창정 좌수가 금당협에 복병을 두고 적을 쳐 15급을 베고 포로가 된 남녀 200여명을 빼앗았다. 그리고 5차 침입 10월 중순경 적사령관 야굴이 대군으로 침입해 당시 충주산성 방호별감 김윤후 장군과 충주의 용사들이 70여 일간의 사투 끝에 이를 물리쳤다.

 

또한 다인철소민의 항전으로 다인철소가 익안현으로 승격되는 영광을 누리고 이 밖에도 월악산전투 하늘재로 추정되는 대원령 전투에서 몽고 병 일천여명을 사살한 대승과 박달현 전투 등 주력부대가 산성을 지키러 떠난 사이 노약자만 지키고 있던 충주의 주성을 공격하여 노약자들을 유린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이로서 충주는 국원경이라는 서울과 맞먹는 대단한 칭호를 받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당시 충주인의 정신력이 얼마나 강인하고 투지가 남달랐다 하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충주를 빗대어 삼국시대 고구려가 쳐들어오면 고구려 편, 백제가 쳐들어오면 백제 편, 신라가 쳐들어오면 신라 편을 들다보니 줏대가 없고 우유부단한 성격이 생겼다고 이야기 하고 있으나 이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삼국시대보다 무려 700여년 뒤에 일어난 대몽항쟁에서 보여준 충주인의 기개는 그 어느 지역 사람들도 감히 따라올 수 없는 강력한 정신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밖에도 고려를 건국한 왕건을 도와 건국에 큰 공을 세운 충주호족 유긍달, 유권열의 지방호족 세력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최초의 승리이자 유엔군 파견의 당위성을 제공하여 이 나라를 되찾을 수 있게 만든 동락전투 등으로 미루어 충주의 강인한 정신력은 국내외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것이었다. 충주 동락전투를 승리로 이끈 6사단은 충주에서 창설된 부대인 만큼 충주사람들이 주축을 이룬 부대였다.

 

이러한 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이제 충주를 비하하는 어떠한 말에도 귀 기울이지 말고 충주의 강인한 정신력을 되살려 이를 바탕으로 옛 영화를 되찾는 충주발전을 이룩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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