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새 숙이고 오니까

박상옥 | 기사입력 2019/01/25 [11:44]

고새 숙이고 오니까

박상옥 | 입력 : 2019/01/25 [11:44]

[특집] 권태응 탄생 100주년 대표 시 50편

 

 

고새 숙이고 오니까

 

                            권태응

 

다저녁때 배고파서

고개 숙이고 오니까,

들판으로 나가던 언니가 보고

“얘, 너 선생님께 걱정 들었구나.”

 

다저녁때 배고파서

고개 숙이고 오니까,

동네 샘 앞에서 누나가 보고

“얘, 너 동무하고 쌈했구나.”

 

다저녁때 배고파서

고개 숙이고 오니까,

삽짝문 밖에서 아버지가 보고

“얘, 너 어디가 아픈가 보구나.”

 

다저녁때 배고파서

고개 숙이고 오니까,

부엌에서 밥 짓던 어머니가 보고

“얘, 너 몹시도 시장한가 보구나.”

 

*권태응(1918~ 1951) 충주출신 시인이며 독립운동가

 

 

▲ 박상옥 (사)한국문인협회 충주지부장     ©

같은 모습을 보고도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게 보입니다. 친절하게 물어 오는 마음과 달리 정확히 짚어내지 못하고, 그렇지 않아도 힘들고 지친 마음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동시 읽으며 배웁니다. 내가 그저 보이는 모습만으로 얼마나 자주 남을 오해 할 수 있었는지 가르침을 배웁니다.

 

살면서 아프거나 배고프거나 쓸쓸하고 다급한 경우에 나 자신도 모르게 ‘엄마!’라는 외마디 비명을 지릅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나의 진면목을 이해 해줄 분이 엄마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설사 자식에게 오해를 받아도 묵묵히 넘기는 이는 오직 부모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뒤 바뀐다 해도 바뀌지 않는 것은 오직 나를 낳으신 부모님의 사랑뿐입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오늘 내가 외로운 것은 친구가 없어서가 아니고 바쁜 핑계로 친했던 친구들과 소원해졌기 때문입니다. 너무 바쁜 척하는 모습만 비쳐보였으니 잘못은 다 내게 있습니다.

 

‘동시’의 마지막 행에 숙연 해는 까닭은 “다저녁때 배고파서 고개 숙이고 오는” 모습을 가장 정확하게 짚어낸 분이 어머니시기 때문입니다.

 

충주시 노은면 글쓰기 모임〔꿈꾸는 문예마을〕 육명순님의 「더 아팠다」에도 무심코 내뱉은 말에 대한 섭섭함이 잘 표현되었습니다.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졌다 / 손바닥도 무릎도 깨져서 피가 난다 / 앞서가던 남편이 뒤돌아보며 / 아니 / 멀쩡한데서 왜 넘어져 하며 그냥 간다 / 깨진 무릎보다 피나는 손보다 / 마음이 더 아팠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보이는 아픔조차 무심했던 적은 없는지 가만히 뒤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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