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

박상옥 | 기사입력 2019/02/19 [11:05]

하얀 눈

박상옥 | 입력 : 2019/02/19 [11:05]

[특집] 탄생 100주년 기념 권태응 대표 동시 50선(26)

 

 

하얀 눈

 

                                     권태응

 

내가 내가 만약에 요술쟁이면

하얀 눈을 한바탕 설탕 가룰 만들어

애들에게 뽐내면서 노나줄 텐데

 

내가 내가 만약에 요술쟁이면

하얀 눈을 한바탕 떡가룰 만들어

집집마다 떡 해 먹게 노나줄 텐데

 

내가 내가 만약에 요술쟁이면

하얀 눈을 한바탕 은가룰 만들어

없는 사람 팔아 쓰게 노나줄 텐데.

 

*권태응(1918~ 1951) 충주출신 시인이며 독립운동가

 

 

권태응 전집에 실린 눈 작품들을 읽는다.

 

▲ 박상옥 (사)한국문인협회 충주지부장     ©

“눈이 많이 오면은 / 좋은 건 누구? // 하얀 이불 얻어 덮는 / 보리싹들과 / 동네마다 눈을 뜨는 / 눈사람들. // 눈이 많이 오면은/ 나쁜 건 누구? // 굴에 갇혀 굶주리는 / 산짐승들과 / 나뭇길이 막혀지는 / 나무장수” 「279쪽 눈 많이 오면은」

 

“살픈살픈 함박눈 / 퍼붓는데 // 아기 남맨 노그라져 / 잠이 꼬박. // 포근포근 함박눈 / 쌓이는데 // 아기 남맨 모르고서 / 잠이 콜콜. // 아침이면 둘이서 / 깜짝 놀라 // 좋아라고 떠들고 / 뛰나갈 텐데” 「269쪽 눈 오는 밤」

 

“함박눈이 퍼붑니다 / 펑펑펑 / 하늘 가득 쉴 새 없이 / 펄펄펄 // 산도 들도 안 뵈게 / 펄펄펄 // 함박눈이 쌓입니다 / 푹푹푹 / 지붕에도 마당에도 / 푹푹푹. / 잠깐 새에 한두 치 / 푹푹푹” 「208쪽, 함박눈」

 

“지붕엔 두꺼운 하얀 눈 / 처마엔 주루룽 고드름 / 문밖엔 쌀랑한 찬바람 // 길목엔 뚱뚱한 눈사람 / 밭둑엔 나란히 새 차우 / 하늘엔 높이 뜬 동무 연” 「175쪽, 눈 온 뒤 마을」

 

“눈이 쌓여 산과 들을 덮어버리면 / 산새들은 배고파서 떼를 져서는 / 마을 찾아 울며불며 날아옵니다 // 마을 오면 싸둔 곡식 줄까 했더니 / 장난구럭 애들에게 혼만 나고는 / 산새들은 다시 울며 날아갑니다” 「151쪽, 산새들」

 

“눈이 막혀 여러 날 갇혔다가 / 나무하러 나선 나무꾼들. // 밥 망태기 매달은 지겔 지고 / 먼 산을 바라보며 길이 바뻐요. // 어디를 가면은 나무 있을까 / 고갤 검고 산 넘어 나무꾼들. // 해질녁엔 다 같이 한 짐씩 지고 / 땀 흘리며 무겁게 돌아옵니다” 「117쪽, 나무꾼들」

 

권태응 전집에는 제목이 다른 눈 작품들이 유난히 많은데, 이는 겨울이란 삭막한 계절과 지병을 겪는 권태응 자신에 대한 상념을 뭇 생명에 대한 연민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나무꾼. 아이들. 산새들이 겪어내는 눈 내린 세상에서 요술쟁이가 되고 싶은 큰 울림의 동심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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