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있는 풍경

김영희 | 기사입력 2019/03/13 [08:51]

책이 있는 풍경

김영희 | 입력 : 2019/03/13 [08:51]

▲ 김영희 시인     ©

검불 사이사이 풀잎들이 파릇파릇 봄을 연다. 풀잎 사이마다 작은 꽃들이 아기자기 웃는다. 어느덧 풀들은 한 뼘이나 자라있다. 산수유는 향기로운 입술로 말을 걸어온다. 목련도 서서히 밍크코트를 우아하게 벗는다. 진달래도 분홍 꽃망울을 내밀고 있다.

 

3월의 함성이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눈 소식이 전해진다. 미세먼지는 봄을 야금야금 먹어댄다. 그리하여 상춘객들의 입은 마스크 속에서 침묵하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긴장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는 요즘이다. 나날이 푸르러지기 때문이다. 가끔 집근처 과수원 길을 따라 한 바퀴 걷다보면 가지마다 피어나는 봄을 만난다. 잠시 앉아 책을 읽다가 다시 걷는다. 계명산자락 근처에는 몰라보게 변해가는 멋진 주택들도 보게 된다. 충주의 발전하는 모습이 보인다. 봄이 오는 과수원 길을 한 바퀴 돌아 집으로 들어온다.

 

예전에는 집은 작아도 방이 텅 비어서 넓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가진 것은 없지만 나날이 늘어나는 것이 책이다. 그러다보니 방마다 책으로 쌓여가고 베란다까지 쌓여간다. 특히 내 방은 책으로 둘러쌓여 좁아지고 있다. 책이 많아 고민하던 지인들이 이해가 간다. 한번은 어느 지방 행사장 화장실 쓰레기통에서 버려진 책을 보았다. 나는 그 쓰레기통에서 버려진 책을 주워왔다. 한 번은 지하철을 타려고 들어갔다. 그런데 한 여인이 책이 가득 들은 가방을 버리고 가는 게 보였다. 짐이 많아 무거워서 놓고 간다는 것이다.

 

내가 어릴 때에는 보이는 책마다 읽었고 신문 쪼가리 글씨도 알뜰히 읽었다. 그러다보니 성경책도 신구약 전체를 한번 이상은 읽었다. 신앙을 떠나서, 나에게는 그냥 재밌는 이야기책이었다. 그래서 구약은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고, 또 펄벅의<대지>소설처럼 재밌게 읽기도 했다.

 

가끔씩 나가면 가방에 책을 가득 받아들고 온다. 책이 점점 쌓여도 필요한 책은 또 사게 된다. 가끔 어린 조카가 오면 눈을 크게 뜨고 이 많을 책을 다 읽었냐고 묻는다. 사실 집이 좁은 거지 책이 많은 것은 아니다. 살림은 꼭 필요한 것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산다. 집을 정리하다 보면 안 쓰는 물건은 버리기가 쉽다. 그러나 책은 계속 쌓아놓는다. 그러다보니 귀한 책을 받아놓고 못 읽은 책도 있다.

 

작가, 시인들이 어렵게 발간한 책을 선물로 받을 때가 더 많다. 책 선물을 받을 때마다 서명하는 그 손길, 그 마음이 순수해서 눈물겹다. 그 모습이 마치 자원봉사자 같은 느낌이다. 글로 밥 먹고 사는 시대는 아니지만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어떤 시인은 서명한 시집을 들고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내게 준다. 내가 책을 읽을 것 같아서 준다고 한다. 책 선물은 대부분 좋아한다. 그러나 짐이 많을 때는 무거워한다. 가끔 헌책방에서 책을 찾다보면 내가 아는 사람에게 서명한 책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도 대형 서점이나 헌책방에 가면 책 읽는 사람들은 많다.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일 때도 종종 있다. 전철이나 차 안에서 사람들은 한 칸에 두세 명은 책을 읽고, 두세 명은 졸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는 다 휴대폰을 본다. 대부분 문자를 보내고, 문자를 읽고, 이어폰을 통해 영화나 게임을 즐긴다. 옆에 누가 있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신경 안 쓴다. 휴대폰에 저장 돼 있는 지인들과 소통을 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휴대폰 인터넷에서 전자책을 읽는 모습도 보게 된다.

 

누구나 살다보면 책 한권 이상의 사연이 닮긴 삶이 될 것이다. 나는 몇 년간 큰 산을 몇 번 넘고 몇몇 깊은 계곡을 헤매다 벗어났다. 어머니를 비롯해 동생과 생이별도 했다. 그러나 모두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위로 삼는다. 어머니는 시간만 나면 책을 읽으신다. 오늘따라 책 읽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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