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 차미

박상옥 | 기사입력 2019/04/19 [09:35]

노랑 차미

박상옥 | 입력 : 2019/04/19 [09:35]

[특집] 탄생 100주년 기념 권태응 대표 동시 50선(34)

 

 

노랑 차미

 

                        권태응

 

차미 차미 노랑 차미

몰식 몰식 냄새 좋에.

 

금빛 금빛 얇은 껍질

깎을 것이 못 됩니다.

 

단물 단물 연한 배 속

발릴 것이 못 됩니다.

 

찬물에다 씨쳤으면

뭉턱뭉턱 사박사박.

 

*권태응(1918~ 1951) 충주출신 시인이며 독립운동가

 

▲ 박상옥 시인     ©

찬물에 담가 놨다 시원하게 먹던 여름과일들, 하우스 재배로 인하여 계절도 없이 먹게 되었다. 개나리 꽃빛깔 따라서 발길을 붙드니 ‘차미 차미 노랑 차미 / 몰식 몰식 냄새 좋에’ 풍기며 벌써부터 길가에 참외 파는 트럭이 보인다. 참외는 유난히 친근한 여름과일로서 우리 땅엔 통일신라시대부터 이미 재배 되었으니 ‘차미’는 ‘참외’의 방언, 권태응 선생도 생전에 그리 쓰였나보다. 참외의 물씬물씬하거나 몰씬몰씬한 단내 향에 끌려 참외를 샀으니, ‘금빛 금빛 얇은 껍질 / 깎을 것이 못 되고’ ‘단물 단물 연한 배 속 / 발릴 것이 못 되’는 참외라서. 깨끗이 씻어 통째로 단물 한 두 방울 흘리며 배어먹는 맛이 최고다. 그럼에도 단단한 씨앗이 싫어 꼭 발라내고 먹는 사람 있으니 씨앗들은 뱃속을 거쳐서도 살아있어 여름이면 길가에 소똥에서도 파랗게 참외 싹이 자라고, 변기에도 참외 씨앗이 둥둥 뜨고, 아기 똥에도 참외 씨앗이 보이고, 이듬해 밭가 두엄에서조차 여기저기 파릇하게 자라나는 게 참외 싹이다.

 

희미한 달빛에서도 잘 익은 참외 노란 빛깔은, 하얗게 잘 보여 서리하기에 좋았으니, ‘참외 밭에 든 녀석’은 몹시 덤벙거리며 날뛰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흔하게 쓰이는 말이었으며, ‘참외 밭에 든 장님’은 정작 필요한 것을 앞에 놓고도 가리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켜 북쪽지방에서 쓰였으니, 참외가 오랜 세월 우리 곁의 친근한 과일이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7080 세대들 중 일부는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말괄량이 아이들이었다. 밤이면 이웃집 텃밭에서 참외 서리를 하다 들킬라치면, “아이들이란 원래 그리 철없이 크는 게지” 하면서 큰 기침에 호통 한번이면 용서가 되던 따스한 인정의 시골에서 자랐고. 찬물에다 대충 씻어서 뭉턱뭉턱 사박사박 배어먹는 참외 맛엔 분명 중독성이 있었던 것이다.

 

대청마루와 평상에 나눠 앉아 별 바라기하며 두런두런 이런저런 얘기 하시다말고, “텃밭에 참외 좀 따 오너라” 하시던, 그 많던 동네 어른들은 다 어디로 가신 걸까. 골목을 왁자하게 만들던 그 많던 개구쟁이들 소리는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오랜 만에 찾아간 고향마을이 한없이 조용하다.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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