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오는 길목에서

남상희 | 기사입력 2019/05/20 [09:16]

여름 오는 길목에서

남상희 | 입력 : 2019/05/20 [09:16]

▲ 남상희 시인     ©

싱그러운 바람이 분다. 아카시아 향기가 열린 창틈으로 들어온다. 참 향기롭고 달콤하다. 요즘은 하루일과를 시작하기 전 제일 먼저 보는 것이 미세번지 상태다. 오늘은 나쁨. 그런 날이면 온종일 걱정이다. 산책은 물론이거니와 외부와의 소통이 단절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초미세먼지 보통. 믿기지 않는 마음으로 산책도 하면서 외부와의 소통도 한다. 언제부턴가 이렇게 하루를 시작하는 날이 당연시 되었다. 환경오염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온 세월에 대한 당연한 대가가 아닌가 싶다. 어쩌다 좋음이란 초미세먼지의 소식은 선물과도 같다. 우울한마음에 비타민처럼 다가와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니 그저 고맙기만 하다.

 

변덕스런 미세먼지에 대한 두려움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은근 걱정이다. 미래에 대한 좋은 환경을 물려줘야 하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 하던데 말이다. 살아생전 그 소임을 다 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 앞선다. 어쩌다 아파트 한편에 쓰레기장 앞을 지나다 보면 가득 쌓인 각종 쓰레기를 보면 분리되지 않고 한꺼번에 내다 놓은 것들을 더러 볼 수 있다. 착하지 않는 이웃도 있나 보다 생각하면서 스스로 반성을 하게 된다. 일주일에 한번 내 놓는 갖가지의 쓰레기를 한번쯤 생각했으면 싶다. 생각 없이 내다 놓은 쓰레기들이 어쩌면 우리 일상에서 제일 먼저 접하게 되는 미세먼지의 좋고 나쁨의 척도가 아닌가 싶다. 하루를 시작하는 매일이 상쾌한 그런 세상이 먼 내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비 개인 오후 하늘이 흐리다. 아직 덜 씻어낸 먼지 때문일까? 비 개인 쾌청한 날에 늘 가깝게 다가와 주던 동산도 요즘은 흐릿해 보이니 아마 백내장으로 눈에 노한이 와서 그럴 거라 생각도 해본다. 조금은 위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지낼 수는 없지 않은가?

 

푸름으로 잔뜩 갈아입었을 이름도 모르는 나무친구들의 모습이 보고 싶다. 지난해에 만났던 그 자리에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을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궁금해서 가까운 날에 한번 보러가야겠다. 말끔하게 갈아입고 멋들어지게 자라서 언제나 그랬듯이 내 이야기 들어 줄 테니 말이다.

 

이맘쯤이면 멀리서 바라다보면 꼭 쑥버무리를 머리에 이고 있는 이팝나무의 만개한 모습을 만나게 된다. 가까이서 보면 꽃잎하나 하나가 더없이 곱고 눈부시게 예쁘다. 봄이 오는가 싶으면 그사이 꽃샘추위가 찾아와 몸살 아닌 몸살을 앓고 난 뒤에 만개한 벚꽃나무는 바람 부는 날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꽃비를 내려주곤 했다. 그랬던 벚꽃나무를 시샘하듯 뒤를 이어 선 보이는 이팝나무와 산딸나무의 멋스러운 자태가 그새 초여름을 부르는 듯하다.

 

아카시아 향기가 짙어가는 계절 오월 가정의 달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행사로 집집마다 젊은 엄마들은 애간장이 녹는다. 어린이날에는 아이들을 챙겨야 하고, 어버이날엔 양가 부모님 챙겨야 하고, 성년의 날도 챙겨야 하고, 부부의 날도 챙겨야 할 것 같은 부담감에 경제적 손실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도 그런 젊음 엄마들이 부럽다. 그랬던 시절이 눈 깜작할 사이 지나가 버렸으니 말이다. 어린이날도 심심하고, 어버이날엔 더 심심하단다. 찾아뵐 부모가 없으니 말이다. 성년의 날에 챙겨주던 자식도 어느새 나이 들어 제각기 가정을 꾸렸으니 말이다. 손주 녀석들의 재롱을 보면 두 배로 늘어나는 기쁨을 얻어 행복하지만 젊은 어미들의 자식 돌봄에 도울 힘이 없으니 이 또한 안쓰럽기만 하다. 나이드니 힘에 부치고, 초스피드 시대에 영리해진 아이들에게 맞는 교육기부란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젊은 엄마들에 부응할 만한 지식이 없다 보니 아이들은 유아원이다, 유치원이다, 학원이다, 등등 시설에 맡겨지기 당연지사다. 형편이 녹록치 않는 가정에서는 맞벌이를 해도 쪼들림에 허덕이는 세상에서 산다. 언제쯤일까? 젊은 엄마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이겨내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그런 세상을 꿈꾸어 본다. 계절의 여왕 오월! 여름이 오는 길목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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