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

박상옥 | 기사입력 2019/06/11 [10:08]

목화

박상옥 | 입력 : 2019/06/11 [10:08]

[특집] 탄생 100주년 기념 권태응 대표 동시 50선(40)

 

 

목화

 

                        권태응

 

목화는 일 년에

두 번 꽃 펴요

 

봄에는 노랑 꽃 향그런 꽃

가을엔 하양 꽃 솜솜이 꽃

 

노랑 꽃엔 벌 나비가 찾아들고

하양 꽃엔 사람들이 찾아오고

 

목화 꽃은 모두들

좋아하는 꽃

 

 

* 권태응(1918~ 1951) 충주출신 시인이며 독립운동가

 

 

▲ 박상옥 시인     ©

딸 다섯 우리들은 가끔 산 너머 목화밭으로 불려갔다. 목화를 한 바구니 따야했는데 목화밭에서 얼굴이 내밀어지는 언니들과 달리 키가 작았던 나는 새하얀 솜뭉치를 꽉 움켜 쥔, 바싹 마르고 뾰족한 목화송아리에 머리가 찔리곤 했다. 키를 더 낮게 한 나는 목화가지를 올려보면서 꽃이 매실만하게 열리기 시작한 목화다래를 땄다. 손톱으로 겉을 벗겨내면 희고 투명한 꿀맛의 육질이 말캉하게 씹히는 고소함은 참으로 맛났다. 딸 다섯은 물론이요. 아들며느리에 사촌까지 워낙에 큰 종가였으니 해마다 목화농사를 하고, 늘 씨아작업을 하던 건넌방이 따로 있었으니, 목화다래를 벗겨 동생들과 나누던 시절도 어느새 50여 년 전이다.

 

“다래 한 송이면 솜이 한 주먹인데, 그게 입으로 쉽게 들어가더냐”고 할머니는 꾸중하시곤 했다. “몽실몽실 피어나는 / 구름을 보고 / 할머니는 저것이 모두 다 목화였으면”하고 바라던 시절이었다면. 예나 지금이나 “포실포실 일어나는 / 구름을 보고 / 아기는 저것이 모두 다 솜사탕이였으면” 구름보고 서로 각각 다른 생각을 했겠다.(구름을 보고 254쪽)

 

“목화밭에 목화다래 / 활짤활짝 벌어지고 // 중략 // 벌어졌다 벌어졌다 / 무엇이 벌어졌나? // 젖 먹고 난 아기 입이 / 방긋방긋 벌어지고”(벌어졌다 225쪽), “대궁에 대로롱 목화다래 / 햇볕 발끈 따시어 모두 피네”(목화 따기 108쪽), “몽실몽실 핀 구름은 / 바람이 밀고 가고 // 몽실 몽실 핀 목화는 / 할머니가 따오시고”(구름과 목화 141쪽 )

 

동서양을 막론하고 털 없는 인간에게 추위를 막는 것이나 의복으로 예를 갖추는 것이 필요했으니, 목화재배의 기쁨이라면 누구보다도 공민왕 12년, 붓대에 씨앗 10개를 숨겨와 장인 정천익과 시험재배에 성공했을 당시, 문익점의 기쁨이야말로 세상을 다 얻은 듯 컸으리라. 마을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재배하여 10년이 지난 후에, 백성들이 솜옷과 솜이불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하니 지금 생각해도 그 기쁨에 전율이 느껴진다.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어보면, 우리 집엔 씨아를 돌리거나 물레를 잣는 모습조차 기품이 넘치던 할머님이 계셨다. 면포를 삶고 마르고 다듬이질 치던 엄마의 마를 새 없는 광목치마의 빛깔이 목화 빛이었으니. 목화의 꽃말이 ‘어머니의 사랑’인 이유는 그 하얗게 시린 빛깔이 추위를 닮았으되 추위로부터 따뜻이 감싸주는 포근함을 품었기 때문이리라. 나의 어린 시절을 일러 무엇 하랴. 「권태응 전집」에서 올라오는 흔하디흔한 목화이야기, 100년 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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