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진 도야지

박상옥 | 기사입력 2019/06/18 [14:12]

없어진 도야지

박상옥 | 입력 : 2019/06/18 [14:12]

[특집] 탄생 100주년 기념 권태응 대표 동시 50선(41)

 

 

없어진 도야지

 

                       권태응

 

피란 갔다 왔더니

남의 집같이 서먹서먹

 

풀이 우거지고

도야지가 없어지고

닭은 두 마리뿐.

 

열어재킨 방에는

그릇 옷 세간 이것저것

 

부시어놓고

훔쳐가고

 

이모두가 뉘 놈 짓일까

이 모두가 뉘 놈 짓일까(1950.7.22.)

 

* 권태응(1918~ 1951) 충주출신 시인이며 독립운동가

 

▲ 박상옥 시인     ©

위의 시는 시인이 피란길을 떠났던 1950년 7월 4일부터 7월 23일 사이에 창작된 것으로 보인다.(P.357), 이런 미간행 육필 동요 동시집 뒷말에서 시인은 짧은 소회를 적었다. “이번 피란으로 인하여 내 병체(病體)는 엉망진창이다. 그 무리무리 해가며 맞은 ‘마이신’ 80병의 효용도 헛놀음이 되었을 뿐더러 악화될 대로 되어버린 요즈음 나는 아무런 불평, 불만을 하지 않으리라. 다만 남은 내 생명을 응시정관(凝視靜觀)하리라. -중략- 생의 염증에서 자살을 염원도 했고 비록 병상에 있어서나마래도 왜놈들이 망하는 것을 보았고 …한결같이 변동 없었던 내 주관 어느 곳에서나 누구 앞에서나 양심적으로 떳떳이 가슴을 펼 수 있다 함이 나로서는 이 위에 없는 영광일 것이다. -중략- 피어리고 눈물겨운 ‘민족의 여명의 날’을 구가(謳歌)하면서 내 작품 생활에 좀 더 깊이 있는 그 무엇을 탐색해보자. -중략- 오늘도 수없는 기침과 담(痰) 여전히 페골부가 아프고 목까지 부었다. 될 대로 되려무나. 사는 날까지 나는 살으리라.(1950.7.28. 여명(黎明)”

 

시인은 이듬해 세상을 떴으니 죽기 전에 6.25의 참상을 직접 목격하였다. 그리고 병환과 피란이란 이중의 고통 중에도 고매한 자신의 성품에 걸맞게 살아있는 모든 것에 애정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으니, 총 61작품들 중 몇 작품을 보자.(P 357쪽)

 

“비행기도 총소리도 / 겁 안 난다. / 모두들 피란 가라 / 나는 일한다. / 어떤 놈이 내 귀를 / 뚤불까보냐?(P 359. 귀머거리 ), 밤만 되면은 / 서쪽새 운다. // 집 생각에 / 잠 안 오네(P 360 서쪽새), 산속으로 산속으로 / 찾아드는 길. / 어린아기 데리고 / 짐을 지고… / 어딘지도 모르고 / 따라가는 길(P. 361. 피란길), 피난곳에서 사귄 동무 / 정들다가 그만 헤져버렸다. /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P 363. 피난 곳 동무), 이부자리 한 짐 실은 / 우차에 앉아 / 들 지나고 강을 건너 / 실려왔어요 / 처음으로 보는 꽃 / 듣는 새고리 / 모든 것이 도무지도 / 이상했어요.(P.362. 이 산골까지), 피란이라 며칠 동안 / 집 빈 새에 / 자물통이 부서지고 / 문이 열리고 / 세간 알짜들만 모두 빼 갔네(p382.. 나쁜 놈들).”

 

“며칠 걸려 적어 놓고 보니 역 부족감을 느낀다. 무엇 때문에 무엇 하려고 이따위 대단치고 않은 작품을 나는 쓰고 있는 것일까?(P.400)” 발표조차 고민했을 시인의 이런 고백이 해마다 돌아오지만 이젠 희미해져 가는 6.25전쟁의 아픔을 되새기게 하는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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