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직 준비 중

남상희 | 기사입력 2019/06/25 [12:50]

난 아직 준비 중

남상희 | 입력 : 2019/06/25 [12:50]

▲ 남상희 시인     ©

아침햇살이 그야말로 눈이 부시다.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는 상쾌한 날이다. 매일이 그랬듯이 정확한 시간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출근도 준비한다. 출근한다는 것이 참 좋다고. 일거리가 있어서 더욱 좋았다고 이제는 그 세월을 되돌아보며 정리해야 할 때가 오긴 오나보다. 이웃사람을 만나면 늘 생동감 넘치는 삶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기분이 묘하다. 같은 동료끼리 수십 년 동안 모임을 했지만 늘 직장일 가정일 혼자 해결하기 바빠 그나마 얼굴이라도 보여주면 반갑다. 바쁘다는 핑계를 대도 그러려니 마음이 통하니 언젠간 그런 날 오리라 기다리며 얼굴 잊어버리지 않을 만큼만 그래 만나 밥한 끼 먹고 차 한 잔 마실 시간도 없었다. 그래서 어쩌다 힐링 좀 하자 만나 1박2일을 주선해 본적도 있었다.

 

삶의 터전에 가까운 근거리여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아침에 일어나 보면 밤새 하나 둘 집으로 귀가하고 그나마 남은 사람들마저 아침에 서둘러 귀가를 재촉하고는 했다. 우린 아직 젊고 할 일이 많아서 바쁘다는 것은 행복이라며 스스로 대견해 하면서, 그런 세월을 한해 두해 보내기만 했다. 하나같이 하는 일은 동일했지만 근무처가 서로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르다 보니 더없이 만나서 함께하기란 쉽지 않음도 안다. 그랬던 시간들의 연속 속에서 이젠 모두 제 자리에서 베테랑이 되어 있으니 시간적 여유가 생긴 게 분명하다. 전에는 어쩌다 만나면 업무에 관한 이야기로 화재를 모았고, 정보교환으로 근무하는데 커다란 노하우도 챙기고, 인사철이면 낯선 직장에서 새로운 직원들과의 적응을 위해 서로 위로하고 축하를 해주곤 했다. 이제 그 많은 세월을 가끔은 멈춰놓고, 조금 여유를 갖고 자신을 챙기고 싶단다. 중년의 모습이 그래서 아름답다고 했나 보다.

 

그동안 쉬지도 못하고 앞만 보고 살아온 각자의 자신을 힐링하는 뜻에서 함께 1박 2일 여행을 준비하기로 했다. 모두가 하나같이 승낙을 한다는 것이 드문일인데 이번엔 모두가 앞서 여행을 기대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단톡으로 출발 일정이 도착했다. 설렌다. 처음으로 생활근거지를 떠나보기로 결론을 냈다. 이동수단도 자가용 보다는 기차로 선택했다. 숙박도 예약완료 주변에 볼거리 먹거리 모두 예약 완료 되었으니 이보다 더 행복한일이 있을까?

 

충주역 제천역 강릉행 기차를 갈아타고 여행길에 올랐다. 날씨로 보면 비가 온다는 예보에 우산도 챙기고 최소한의 짐만 챙기기로 했는데 막상 숙소에 도착해 여정을 푸니 몸에 좋은 것들은 다 모였다. 이건 어디에 좋고, 이건 또 어디에 좋고, 주는 대로 꿀꺽 잘도 챙겨 먹는다. 참 오랜만에 타본 기차여행이라 모두가 피곤했을 텐데도 쉽게 잠들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덩달아 뒤척였다. 새벽잠이 없는 친구목소리에 창밖은 난리가 났다. 온다던 비가 천만다행으로 물러가고 눈부신 일출의 광경에 셔터를 누르느라 바쁘다. 숙소에서 빤히 내다보이는 바다에서 막 올라오는 해도 참 오랜만에 만나 본다. 이십여 년 만에 만나본 풍경이다.

 

아침잠이 많은 친구들은 그새 이블 속으로 들어가 나머지 꿀잠에 빠지고 새벽부터 나댄 탓에 조식이라도 먹어야 갰다는 친구들은 숙소를 나와 아침을 먹으로 나왔다. 정동진에서 심곡 항까지 이어진 바다 부채길은 몇 번째 와 보지만 이번처럼 아름다운 풍경은 처음인 것 같다. 바람도 적당하게 불어와 초여름 더위도 잊게 해주었다. 주변정리도 잘 꾸며나서 오르락내리락 산책길을 따라 마음도 따라가고, 사랑도 따라가고, 힐링의 보약도 챙겨먹었더니 힘이 저절로 났다. 심곡 항에서 정동진역까지 택시로 이동해 와서 정동진 주변의 풍경 속에 푸욱 빠져도 보고 우리 일행은 아쉬움을 남기고, 강릉으로 장소이동 중앙시장의 먹거리에 또 신이 났다. 맛집 찾아 점심을 먹었는데도 들어갈 배가 따로 있었나 보다. 즐거운 여행이라 함은 함께하는 이들이 좋아야 하고, 잠자리가 편해야 하고, 먹거리가 풍부하면 최고라고 했다. 이번 여행은 모두 만족 대만족이란다. 매년 이맘쯤 이젠 동서남북 어디라고 달려가잖다. 그러려면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을 챙기는 일이다. 마음 설레면 어디든 가지만 다리가 떨리면 못 간다고 미리 미리 운동도 하고 이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하는데 난 아직도 준비 중이다. 나중은 우리에게 없다고 지금이 최고라고 한다. 이젠 적당하게 뜻에 따라 수긍할 때가 내게 오긴 했나보다. 바쁘다는 핑계도 직장이 있어서 둘러 대었는데 이젠 꼼짝없다. 둘러댈 직장도 이젠 떠나와야 한다. 그래서 난 아직도 준비 중이라고 둘러 댄다. 직장을 떠난다하더라도 내 삶은 아직도 준비 중이고 싶다. 준비 할 때가 제일 행복하니 말이다. 내년의 또 다른 미지의 그곳으로 떠나 볼 준비가 남아 있으니 진행 중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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