칡꽃이 피면

김영희 | 기사입력 2019/07/10 [08:50]

칡꽃이 피면

김영희 | 입력 : 2019/07/10 [08:50]

▲ 김영희 시인     ©

더운 한낮 칡꽃이 나를 반긴다.

 

산기슭 칡덩굴에서 붉은 자줏빛 도는 칡꽃 향기가 은은하다. 덩굴 사이사이 피어난 칡꽃은 송이 밑에서부터 앙증 앙증 소박하게 피고 있다. 칡은 삶의 높이를 부러워하지 않는가. 낮으면 낮은대로 벋어나가고, 디딤돌이 있으면 서슴없이 디딘다. 그러나 그렇게 꾸밈없이 살아도 덩굴 속에는 상처 받은 저들이 있다. 자리를 빼곡하게 차지한 칡덩굴 속에서 영양분을 잃은 식물들이 햇볕을 받으려 고개를 어줍게 내민다.

 

그렇지만 칡은 뿌리도 내어줄 만큼 쌉쌀하게 세월을 견딘다. 뿌리는 갈근즙으로 먹을 수 있다. 줄기껍질은, 갈삼 갈포벽지, 갈건, 갈포명주로도 쓰이고 꽃은 차로도 마신다. 알고 보니 갈포(葛布)는 이 밖의 여러 재료로도 쓰인다. 칡의 생명력도 자신만을 위해 견디지는 않는 걸까. 뿌리를 내린 만큼, 덩굴을 벋은 만큼, 향기를 발산한 만큼의 칡꽃 향기가 추억의 향기로 번진다. 칡덩굴 하나를 만져본다. 단단하고 질긴 성질이 느껴진다.

 

어릴 때, 마을 사람들이 시간 날 때마다 모여서 칡껍질을 벗기는 모습을 보았다. 그 일을 하는 주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화개산 아래 연못가에서도 있었고, 여우내 마을 빨래터에서도 껍질을 벗겼다. 그 중에는 방년의 나이도 있었고 어른도 가끔 보였다. 마을 빨래터 한쪽에서는 빨래를 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칡껍질을 벗겼다. 그러나 화개산 아래 연못가에서는 칡껍질만 벗겼다. 빨래터에는 손빨래와 칡껍질 벗기는 일을 하면서도 즐거운 웃음소리가 간간이 흘러나왔다.

 

칡껍질은 삶아서 식힌 것처럼 퉁퉁 불어 있었다. 언니들은 부드럽게 불은 칡 줄기를 잡고 껍질을 죽죽 벗겼다. 그러면 껍데기가 미끄러지듯 잘 벗겨졌다. 칡껍질은 소죽 끓인 냄새와 비슷했다. 칡껍질 벗긴 것은 각자 1관씩 묶어 저울에 달아서 대가를 받아갔다. 벗긴 칡껍질로 무엇을 만드는지 궁금해졌다.

 

나는 놀다가 언니들을 따라 한 번 벗겨보았다. 생각보다 잘 벗겨졌다. 몇 개쯤 벗겼을까. 갑자기 칡즙이 먹고 싶어 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 칡즙이 먹고 싶다고 하자 아버지는 칡 토막을 하나 주셨다. 퍽퍽한 칡뿌리를 벗겨서 입에 넣었다. 약간의 감초 맛이 느껴졌다. 다음날 나는 아버지를 따라 앞산자락에 올라갔다. 아버지는 나를 옆에 앉히고는 이야기를 꺼내셨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음식과 입을 옷 등이 자연에서 얻는 것이란다. 그러니 자연을 아끼고 사랑해야 된다’고 하셨다. 그날부터 나는 자연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도 새로웠다. 사람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왜 하는지도 생각하게 되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내 키만 한 칡이 보였다. 아버지는 어린 칡을 뽑으려고 하였다. 나는 키워서 캐먹을 생각이 들어 뽑지 못하게 했다. 그런 내게 아버지는 지금 이 칡을 뽑지 않으면 나중에는 큰 밭 전체가 칡밭이 된다며 뽑아야 한다고 했다. 자연을 사랑해야 된다고 하시면서 칡을 뽑아내는 아버지가 이해가 잘 안되었다. 생각할수록 어디까지가 자연이고 어디까지가 자연이 아닌지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평소에 뜨거운 물을 식혀서 버리곤 하셨다. 작은 생명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그런 어머니가 예쁜 칡꽃 한소쿠리를 따오셨다. 어머니는 감자를 갈아 밀가루와 섞은 다음 야채에 칡꽃을 넣어 부침개를 만들었다. 부침개를 먹다보니 오다가 뽑아버린 칡이 가여워져서 맛이 시큰둥해졌다. 어머니는 내 기분은 모르는 눈치였다. 그러면서 칡은 약간의 마비독성이 있어서 이렇게 섞어먹으면 괜찮을 거라고 하셨다. 쓰임새가 이렇듯 많아도 유해식물로 지정된 칡이다. 갈등은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는데서 나왔다고 한다. 칡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는 칠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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