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설 례임

남상희 | 기사입력 2019/08/12 [08:59]

또 다른 설 례임

남상희 | 입력 : 2019/08/12 [08:59]

▲ 남상희 시인     ©

정신없이 하루가 간다. 바쁘게 사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한다. 생기는 것도 없는데 매일이 바쁘다. 지금 내겐 휴가가 별도로 없다. 출근할 곳이 없으니 당연 매일이 내겐 휴가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여기저기서 나를 필요로 한다.

 

전에는 그래도 직장생활을 핑계라도 댈 수 있었지만 이젠 핑계가 누구에게든 통하지 않는다.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이 요즘 들어와서 부쩍 느껴진다. 내 의도가 아닌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노후의 설계도가 저절로 생겨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요즘 한 여름의 열기로 숨이 턱턱 막힌다고 난리도 아니다. 무언가에 집중하다 보면 더위도 잊게 마련인가 보다. 내 생활은 요즘 들어와서 그럴 틈도 없이 바쁘게 산다. 달력을 보면 하루가 빤한 날이 없다. 약속도 약속이지만 그 모든 약속엔 우선순위가 있다는 것도 근례에 와서 알았다. 급한 사람이 먼저 불러 주는 사람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첫째 주는 이래서 바쁘고, 둘째 주는 또 저래서 바쁘다. 선약도 지킬 수 없는 상황이면 어쩔 수 없다.

 

며칠 전엔 몇 년 전에 함께 근무했었던 지인에게서 문자가 왔었다. 몇몇 분과 함께 자리를 마련하려고 하는데 괜찮겠냐는 내용이었다. 가까운 이웃에 살면서도 서로 근무 장소가 다르다 보니 얼굴본지도 꽤 여러 해가 지나서 그리움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서로 소통하면서 일정을 짜고 또 짜서 겨우 만남의 날이 잡혀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달력에 일정을 동그랗게 그려 놓았다. 장소는 서로 좋아하는 곳이 있으면 공유하면 된다고 했다. 하루하루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 앞두고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소통하면서 날짜를 정했던 날이 아직 주일 남았는데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그중에 한분이 번개 팅을 해왔다며 빨리 나오라 한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나가고 싶었지만, 멀리 나와 있어서 아쉽게도 다음을 기약해야 했었다. 많이 보고 싶었던 지인들이였는데, 그날따라 딸애 집에서 손주를 며칠 봐 주기로 약속이 되어 있어서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해산할 날이 아직 남았는데 첫애 보느라 힘이 들었던 모양인지 조산기가 있다기에 서둘러 모든 선약을 뒤로 하고 달려가야 했다. 하루하루 힘들게 버티고 있는 딸애 모습을 보면서, 조산아를 낳았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설마 하는 마음에 걱정도 태산이다. 병원에서 말하는 조산아 중에서도 미숙아만 아니면 된다고 해서 딸애 곁에서 하루하루 잘 버티게 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며칠 있으면 두 번째 생일이 다가오는 손주는 동생 만날 준비가 덜 되었는지 떼도 늘었다. 다행히 할머니를 잘 따르니 천만다행이기도 하다. 한참 말을 따라할 시기라 그런지 엄마 아빠는 기본이고 발음이 힘든 할머니도 발음도 열심히 연습하느라 바쁘다. 놀다가도 눈 만 마주치면 바로 할머니 입술에 눈을 떼지 않는다. 그럴 때 마다 할.머.니. 라고 하면 열심히 따라서 발음하는 모습이 참 귀엽다. 손주바보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도 해 본다. 친구들 모임에서 절대로 손주자랑하기 없기 회칙도 만들었다. 손주 없는 친구들 서러워서 못 살겠다고 하니 말이다. 벌금을 내서라도 손주자랑 하고 싶을 때가 있다는 것이 내겐 그저 행복이고 설 례임이다. 엄마 아빠 발음하기도 힘들 텐데도 할머니라고 불러주려고 애쓰는 손주가 있으니 이젠 정말 할머니 자격증이 나온 것 같다. 요즘은 아침저녁으로 만나기만 하면 할머니라고 노래를 한다. 세상에 모든 할머니들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을까? 손주를 만나면서 새로운 설렘으로 성장해 나가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된다. 삶은 또 다른 모험으로 시작이라는 두 글자가 선물처럼 다가와서 설렌다. 그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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