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에 다녀온 남편

박상옥 | 기사입력 2019/10/29 [09:37]

미용실에 다녀온 남편

박상옥 | 입력 : 2019/10/29 [09:37]

 

미용실에 다녀온 남편

 

                              유남희(1952 ~ )

 

인사성 밝은 원장님 미소 속에

스스르 잠이 든 사이였겠다.

 

귀밑 힌터럭 싹둑싹둑 날리고

정수리 쪽도 쓰러트린 가위손이

내친김에 가르마 삥삥 터주고

삐죽삐죽한 제비초리도 쓱싹쓱싹

미용실 타일벽지 속 화보되었다

 

허참, 착각은 자유여!

질투로 내지르는 나의 코웃음에도

한바탕 웃으며 마냥 유쾌한

스무 살 청년이 된 듯

으쓱하는 남자

 

 

▲ 박상옥 시인     ©

70세 가까운 유남희 선생은 바쁘다. 평일에는 3000여 평이 넘는 텃밭에 각종 유실수와 채소와 곡물들을 가꾸고 주말이면 남편과 아이들을 챙기러 서울을 오가며 두 집 살림을 산다. 각박한 시대를 살아오느라 마음껏 공부하지 못하였으나 누구도 원망하지 아니한다. 문학의 뿌리가 책이나 노트에만 있지 않고, 뿌리고 심고 갈고 가꾸는 흙속에 있음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사람들, 꿈꾸는 문예마을 회원들과 일상에서 문학생활을 실천하며 밝고 유쾌하게 사신다.

 

평일엔 떨어져 사니, 홀아비 아닌 홀아비남편이 아내에게 잘 보이려고 모처럼 말쑥하게 이발을 했을 것이다. 아내는 농투성이로 비지땀을 흘리다 올라간 서울에서, 이발을 하고나서 젊어 보인다며 좋아하는 남편이 그저 곱지만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거나 말거나 평생을 해로하는 동안 풀, 바람, 별을 스쳐 온, 때때로 천둥 같은 시간을 부부가 함께 건너왔을 것이므로, “착각은 자유여! / 코웃음에도 한바탕 유쾌한” 저 부부의 존재가 한없이 귀하게 생각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충주시 노은면에 복지센터는 신경림 시인 생가마을에 있고, 바로 곁엔 농무에 등장하는 양조장이 담을 치고 있다. 그것에서 농사짓기와 문학짓기를 함께하는 분들이 문학동아리를 만들고 문학지를 창간했다. 위의 시는『꿈꾸는 문예마을』 창간호 32쪽에 실린 시다. 위의 시는 문학이 생업인 사람들만 이해하는 시가 아니어서 더 따습다. 마주치는 일상을 문학작품으로 빚어내는, 소박한 진정성에 기초한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모임이 『농무문학,놀터문학』이다. 그 회원들 중에 유쾌한 열정 속에서도 서러움을 찾아내는 남다른 눈을 가진 유남희 시인이 보다 뜨겁고 시원한 시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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