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아워

신옥주 | 기사입력 2019/11/26 [12:56]

골든 아워

신옥주 | 입력 : 2019/11/26 [12:56]

▲ 신옥주 주부독서회원     

현대에 들어서 사건사고가 점점 대형화되어 죽거나 다치는 사람들의 상해 정도가 심하다는 뉴스를 듣기는 했지만 나와는 먼 남의 일이라는 인식이 있어 신경 쓰며 들은 기억이 별로 없었다. 올해 여름 남편에게 교통사고가 났다는 전화를 받고 많이 다치지 않기를 기도하며 부리나케 달려갔다. 목 뼈 6번과 7번이 부러져 수술을 해야 했지만 수술도 잘되었고 입원기간도 짧았고 퇴원하여 통원치료를 하면서 많이 좋아졌다. 병원에 오가면서 간병을 하다 보니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는 사람들도 많고 확실하지 않은 정보들로 넘쳐났다. 그래서 병원에 관한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골든아워라는 책은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8’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이 책의 제목 골든아워는 사지가 으스러지고 내장이 밖으로 나온 중증외상환자는 1시간 내에 전문 의료진과 장비가 있는 병원으로 이송되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나는 처음 이 책 제목을 보고 TV시청률이 가장 높은 시간대를 지칭하는 골든타임을 말하는 줄 알았다. 저자 이국종님은 현재 아주대학교병원 외상외과 과장이며, 우리에게는 2010년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되었다가 총탄에 맞아 생명이 위급했던 석해균 선장을 살린 의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에 언론에 자주 등장했지만 눈여겨 본 적이 없으며, 언제나 분노에 가득한 표정으로 화면에 나왔다는 생각이 들어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도 했었다. 이제 이 책을 읽고 왜 그런 표정으로 우리를 보았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제 1권의 주요 내용은 ‘사람을 살리는 것, 그것이 우리의 일이다’라며 단 한 생명도 놓치지 않으려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분투가 소상히 적혀 있다.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숭고한 뜻을 가지고 제 살을 깎아먹는 심정으로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 감사하게 되었고, 그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소중히 생각하며 잊지 않는 저자에게 놀랐다. 제 2권은 막을 수 있었던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고도 왜 우리는 변하지 않는가라고 무력감을 드러낸다.

 

사실 한국의 외상 환자들은 빠른 시간 내에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충분히 살 수 있음에도 치료를 놓쳐 길에서 죽어간다고 한다. 더구나 예방 가능한 사망률로 기록될 뿐인 대부분의 외상외과 환자들은 가난한 노동자라고 한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세대인 나는 발전이 무엇보다 우선이며 잘사는 것만 바라고 살았던 윗세대에게 교육을 받았다. 당시는 중증 환자는 죽는게 다반사였다. 이제 돌이켜보니 그 이면에는 생명의 소중함을 경원시하지 않았나 하는 부끄러움이 몰려온다. 살릴 수 있는 환자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살려야 한다고 부르짖으며 몇몇 사람들과 동분서주하는 이국종 의사에게 작은 응원이지만 박수를 보낸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중증외상은 3대 사망원인 중 하나라고 한다. 전체 사망 중에서 10% 가깝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많을 거라고는 정말 꿈에도 몰랐다. 막연히 교통사고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정말 무지했다. 환자들 대부분이 평균 이동시간만 245분이나 걸리는 시스템에 목숨을 의지하고 있으며 이병원 저병원에서 검사만 하다 길거리에서 사망한다. 대형 병원 입장에서도 적자가 심하다며 기피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보건의료 정책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분야이다. 우리나라 중증외상 시스템은 너무나도 열악한 환경이며 투입 인력은 선진국의 삼분의 일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물론 정책적인 면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설득해야하지만 빨리 저자의 바람대로 되기를 바란다. 저자의 왼쪽 눈은 거의 실명 상태이고, 오른쪽 어깨나 왼쪽 다리도 온전하지 못하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버티고 있는 저자를 보며 내 할 일도 제대로 안하고 게으름피우던 날들이 떠올라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제라도 더욱 성실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저자는 이 책을 완성하는데 있어서 김훈의 ‘칼의 노래’를 등뼈 삼아 글을 썼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뼈대로 썼다고 하니까 괜히 더 읽기 쉽고 반갑기도 했다. 글은 군더더기가 별로 없으며 에둘러서 말하지 않고 핵심을 집어주어 가독성이 좋아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의료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읽어도 알기 쉽게 쓰인 이 책을 이 나라를 지탱할 현명한 젊은이들에게 특히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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