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박상옥 | 기사입력 2019/12/10 [09:28]

사랑

박상옥 | 입력 : 2019/12/10 [09:28]

 

사랑

 

                          김양기(1959~ )

 

휴지를 접었네

 

버려지길 기대한 적 없지만

버릴 때가 되었네

 

후르륵 꾸겨본 적 있었네

아무리 고운 햇살이 와도 펴지질 않았네.

 

 

▲ 박상옥 시인     ©

오늘 아침은 3연의 짧은 ‘시’에서 사랑의 얼굴을 만납니다. 1연에서 새하얀 휴지는 마음을 닦아주는 휴지이고 사랑의 얼굴입니다. 2연에서 ‘버려지길 기대한 적 없지만’ 버릴 때가 된 것도 ‘사랑’입니다. 두 마음사이에 일이 생기고 다친 마음일 때, 기꺼이 그를 닦아줌으로 스스로 사랑이 된 얼굴입니다. 휴지라면 그냥 버렸겠지만 사랑이기에 때를 기다려 기꺼이 놓아주었던 얼굴입니다.

 

3연에선 사랑을 휴지처럼 ‘후르륵 꾸겨본 적 있었네’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랑을 꾸겨보다니요. 휴지라면 함부로 꾸겨도 보고 버려도 되겠지만, 역설적으로 사랑이기에 사랑했기에 자신의 자존감을 기꺼이 꾸겨버릴 수 있었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렇게 자존감을 버린 적이 있었고, 존재의 의미와 사유의 깊이가 화인처럼 새겨졌기에 일생 ‘아무리 고운 햇살이 와도 펴지질 않았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을 휴지로 칭한 시인에게서 현자의 안목이 느껴집니다. 휴지에서 사랑까지야말로 어린이에게 현자까지 참으로 아득히 멀고 또 가까운 것이 사랑임을 보여주니까요. 평소 도덕과 정의에 있어서 날카롭게 칼금을 긋고 사는 시인의 성정을 알기에 오늘의 <사랑> 시에 이리 마음이 아픕니다. 지금은 사랑에도 계산이 앞서는 강퍅한 시대, 우리들 삶의 영역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허울뿐인 사랑이, 시인의 마음 안쪽에서 지펴져 나오는 따습고 진솔한 사랑으로 훈훈한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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