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에 젖다

김영희 | 기사입력 2020/03/30 [12:53]

동심에 젖다

김영희 | 입력 : 2020/03/30 [12:53]

▲ 김영희 시인     ©

어느덧 목련 진달래 개나리 벚꽃 등 봄꽃이 화사하다. 지난 2월에는 딸이 둘째 아들을 순산했다. 첫째는 낳자마자 황달이 심해 며칠 입원을 했었다. 그래서 아기가 울면 허둥대고 작은 소리에도 예민해졌다. 그런데 둘째는 경험이 있어서인지 모든 것이 수월하게 보인다. 그런데 산모가 미역국은 먹는 둥 마는 둥 한다. 산후조리엔 미역국이 무난해서 가장 많이 먹는 국이지만, 요즘은 좋은 음식이 많아서인지 낳자마자 여러 음식을 잘 챙겨 먹는다.

 

숲길

                   감태희(4세)

 

하늘은 깨끗해요

해님도 깨끗해요

나무도 깨끗해요 

나무 밑에는 쓰레기 많아요

누가 버렸을까

아이참.

 

지난 3월초 S대학교 숲길에서 외손자가 한 말을 받아 적은 것이다. 딸이 몸조리 하는 동안 네 살 태희와 집 앞 대학캠퍼스 숲길을 자주 걷는다. 한낮의 숲길은 사람이 뜸하고 조용해서 좋다. 캠퍼스 옆 숲길로 접어들 때면 태희는 쓰레기가 많다고 지적한다. 해님도 나무도 예쁜데 쓰레기가 많아 기분이 안 좋다고 한다. 숲길로 지나갈 때마다, 쓰레기를 치웠는지 확인해 본다. 쓰레기가 그대로 있으면 쓰레기 아직도 안 치웠네 참나원, 한다. 그런데 한달 만에 숲길 쓰레기가 깨끗이 치워졌다. 태희는 깨끗한 숲을 보자 고맙다고 말한다.

 

숲길을 지나 잔디밭으로 갔다. 잔디밭에서 그림자를 보자 그림자가 해님하고 숨바꼭질 한다며 재미있어 한다. 잔디밭을 지나 연못으로 가 본다. 커다란 소나무가 연못 쪽으로 기울어 있는 걸 보더니, 소나무가 물 마시고 싶어서 연못으로 내려가는 거냐고 묻는다. 연못에서 놀던 금붕어가 다가온다. 태희는 금붕어에게 말을 건다. 금붕어야 간식을 안 가져왔어 미안해 다음엔 꼭 가져와서 줄게 기다려 한다. 연못을 보며 걷다가 의자에 앉아 에너지 충전을 하자고 한다. 조금 지나자 에너지 완료 됐다며 운동장으로 가자고 한다. 대학 운동장 가에는 진달래 개나리가 나란히 피어난다. 태희는, 꽃님아 반가워! 하며 진달래 꽃잎을 가만히 만져본다. 향기도 맡아본다. 진달래꽃에는 호박벌이 있다. 호박벌을 보자, 왕벌아 진달래꿀 맛있니? 묻는다. 3월 진달래꽃에 있는 호박벌은 처음 본다. 꽃마다 꿀을 따던 호박벌이 건물 쪽으로 날아간다. 꽃길을 따라 운동장으로 내려갔다. 태희는 쉬지 않고 큰 운동장 두 바퀴를 뛴다. 얼마나 빠른지 따라가기 벅찰 정도다.

 

이번에는 소꿉놀이를 하자고 한다. 나뭇가지를 주워서 땅에다 밥상을 그리고, 여러 음식과 커피잔까지 그린다. 태희가 엄마 할테니 나보고는 태희하라고 한다.

 

그리고는, ‘태희야 장난치지 말고 골고루 잘 먹어야 키도 크고 튼튼해지는 거야'하면서 엄마처럼 말한다. 태희가 하자는 대로 역할연기를 하다 보니, 만족스런 표정이다. 한번은 딸과 태희 밥 먹는 습관에 대해 말을 하다가 딸의 소리가 조금 커졌다. 옆에서 장난감 가지고 조용히 놀던 태희가 엄마 얼굴 한번 보고 고개를 숙이더니 '엄마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 한다. 뭐라고 했어 묻자, 엄마를 다시 보더니 '엄마 그렇게 말하면 안돼요`한다. 진중하고 의젓한 표정이다. 아이 앞에서는 찬물도 함부로 못 마신다는 말이 실감난다.

 

지난 1월 말에는 태희하고 놀다가 간다는 말을 안하고 왔다. 그러자 바로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모자 잘 쓰는 모자할머니 만나면 좋은데 헤어지는 게 너무 슬프다며 눈물 뚝뚝 흘린다는 것이다. 태희의 그 말을 KBS아침마당에 보냈더니, 백화점 상품권 5만원 을 보내주어서 고맙게 받았다. 2월 26일 동생이 생긴 태희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서너 달 외출을 삼가고 태희와 보내면서 동심에 젖어본다. 아이는 보는 대로 말하고 듣는 대로 기억한다. 만날 때마다 태희만의 해맑은 표현을 기록해주고 싶다. 동심을 읽으며 보내는 봄이 코로나의 스트레스를 잊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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