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신발

김영희 | 기사입력 2020/06/16 [09:41]

태양의 신발

김영희 | 입력 : 2020/06/16 [09:41]

▲ 김영희 시인     ©

해가 갈수록 햇볕을 쬐거나 길을 걸어도 내가 태어난 충주가 좋다. 숨을 쉬거나 하늘을 보아도 충주라서 더 따듯하다. 비바람이 불거나 천둥을 칠지라도 충주는 편안하다. 느닷없이 빈주머니로 나가도 주머니엔 반가움이 가득 채워지는 충주라서 행복하다. 그래서 나는 충주를 걸어 다니기가 즐겁다. 버스를 타도 좋고 자전거를 타도 좋다. 바람소리 물소리에도 부모님 향기가 느껴지고 대대로 숨결이 이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걷는 걸 즐기다보니 웬만한 거리는 걷는 게 편하다. 외지에 살다보면 젊어서는 부모님이 계셔서 고향을 찾게 되고, 나이 들어서는 조상을 찾아 고향을 찾는다. 그러다 나이가 더 들면 고향으로 돌아와 살고 싶어 한다. 부모님의 사랑과 유년의 추억이 곳곳에 남아서일까. 우리 사촌과 육촌들은 충주에 여럿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형제 중에서는 나만 충주에 살고 있다. 나가 사는 형제들도 생가는 특히 그리워한다.

 

어느덧 감자밭에는 감자꽃이 핀다. 감자꽃에서는 감자 냄새가 난다. 감자는 뿌리와 꽃이 같은 향기를 낸다. 그래서인지 감자꽃이 유월의 향기를 더욱 진하게 한다. 감자꽃 향기에서 생가 텃밭 냄새가 난다.

 

코를 벌름거리게 하는 밤꽃 향기도 불어온다. 이럴 때면 숨을 잔뜩 들이쉬게 된다. 밤꽃이 비를 맞으면 향기가 더욱 차분해진다.

 

오월부터 불 지르던 덩굴장미는 정신을 쏙 빼놓더니 유월 중순이 되자 꽃잎이 고개를 떨군다. 과수원에는 사과와 복숭아가 하루가 다르게 커간다. 과일도 어릴 때는 다 보호색이다.

 

유월은 작은 열매들이 있어 달달하다. 고추밭에는 어린 고추가 주렁주렁 커간다. 보리추수가 끝난 빈 밭은 이모작을 꿈꾼다. 멍석딸기도 익어 갈증을 달래는 유월이다. 버찌와 오디는 새카맣게 익어 떨어진다. 거름 없이 자란 나무에 잎 반 열매가 반이다. 열매가 익은 나무는 열매의 반은 키워준 흙에게 주고 반은 새에게 주고 나머지는 나그네에게 준다.

 

저 나무들처럼 내 인생 다 털리며 살아도, 나만이 퍼낼 내 안의 우물은 남아있다. 그것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것이다. 내 안의 우물은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특히 고향은 내안의 우물을 퍼내게 하는 마중물이고 물꼬다. 우리생가의 펌프는 마중물을 두 바가지는 부어야 물이 콸콸 나왔다. 어떤 날은 기분이 좋은지 반 바가지만 부어도 기다렸다는 듯 시원한 물이 나왔다. 지금은 수도가 들어와 펌프가 없어졌지만 추억의 펌프질은 여전히 퍼올리고 있다. 살다보면 우리는 서로에게 물꼬가 돼 주며 살기도 한다.

 

개량보리수도 시선의 물꼬를 트며 새빨갛게 익어 꽃처럼 곱다. 어릴 때 산자락 논가에서 보리수 따 먹던 생각이 난다. 보리처럼 생겨서 씨는 크고 맛은 달짝 떨떠름했다. 추억이 있는 논과 밭도 이제는 다 남의 것이 되었지만 마음만은 떠나지 못하고 산다.

 

올해는 계절이 선사하는 야채를 곁들여 혼밥을 즐긴다. 코로나19로, 외출이라고는 들과 산이어서 아까씨밥과 쑥밥을 여러번 해먹었다. 머위쌈도 먹어보니 쌉싸름하니 좋다. 혼밥을 먹다보니 자유로운 밥상을 즐길 수 있어 좋은 점도 있다. 오늘은 감자밥을 해먹었다. 감자밥은 어릴 때 자주 먹던 밥이다. 밥할 때 감자를 넣으면 따로 찌지 않아 좋고 감자맛이 밴 밥이라 더 맛이 있다. 어린날 생가 왼쪽 텃밭은 감자밭이었다. 아버지는 자주감자가 더 좋다고 늘 자주감자를 심었다. 그러나 나는 자주감자는 맛도 아리고 기름하고 눈이 많아 까기 어려워 싫어했다. 흰감자는 둥글고 껍질이 얇아 살살 문대기만 해도 잘 까지는데 자주감자는 눈이 많아 까는 시간도 더 걸렸다. 어머니를 도와 몇개 까다가 서너개 까고 놀기 일쑤였다. 감자 쪄먹는 계절이 되면 우리집 마당 끝 도랑가에서는 감자 썩히는 냄새가 났다. 감자 녹말가루를 내기 위해서다. 감자가 물컹물컹 썩으면 거름망에 짜서 녹말을 가라앉혀 자주 물을 갈았다. 몇날 며칠 물을 갈아 주다가 물을 따라 버린 후 고운체에 거른 다음 녹말을 말리면 녹말가루가 되었다. 녹말가루를 반죽해 콩을 넣은 감자떡을 쪄주던 어머니 생각이 난다. 날이 갈수록 점점 생가의 향기가 그립다. 내가 나고 자란 생가에 가끔 가면 부모님 목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직도 생가에 가면 신발도 신지 않고 반겨주시던 아버지 생각이 난다. 아버지는 떠나셨어도 아버지가 지은 집은 그대로이기 때문일까. 생가 텃논을 가 보았다. 물이 잘 담겨 있는 텃논은 해질녁 태양을 담고 있어 더욱 아름답다. 이미 남의 논이 돼 버렸지만 그저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끌린다.

 

오늘따라 텃논을 환하게 물들이는 태양이 더욱 빛난다. 태양을 보면 볼수록 신기하다. 오십억 년 가까이를 어떻게 어마어마한 불덩어리로 살 수 있을까. 앞으로 태양이 50억을 더 산다고 생각하니 지구의 수명도 태양과 같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갑자기 생가 텃논을 보니 모심던 부모님 생각이 나서 가족카톡으로 어머니 번호를 눌렸다. 단체카톡전화 통화내용은 단톡가족이 다 들을 수 있다. 그러다보니 여기저기서 말을 하게 되고 가족회의를 하는 느낌이다.

 

어머니는 통화에서, 브라질 생활이 아무 불편함이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다. 어머니의 밝은 목소리는 늘 안심하게 한다. 겨울을 실어하는 어머니가 겨울이 없는 나라에서 살아서인지 더욱 밝아지신 것 같다.

 

오십억 년 가까이 스스로를 태워도 변함이 없고, 지구보다 109배 크다는 태양을 나는 어머니처럼 좋아한다. 그 빛으로 지구의 생명을 살리고 달을 밝혀 지구의 밤길을 아름답게 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중심 충주는 걸어도 걸어도 닳지 않는 태양의 신발을 신은 것 같다. 이제는 코로나에서 벗어나 건강한 대한민국이 되길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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