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너머 희망

남상희 | 기사입력 2020/08/22 [12:57]

희망 너머 희망

남상희 | 입력 : 2020/08/22 [12:57]

▲ 남상희 시인     ©

봄날 아지랑이처럼 아스팔트 위에 아지랑이가 이글거린다. 지루함의 극치를 안겨주었고 무섭도록 진종일 내렸던 장마의 끝으로 또 시작되는 폭염이 연일 기승을 부린다. 생에 처음으로 겪어보는 일들이다.

 

사계절중에 여름은 희망이 있어 좋았다. 폭염을 식히기에 좋을 만큼 적당하게 내려주는 장마가 며칠 이어지다 그치고 나면 계곡마다 삼삼오오 가족나드리 나온 인파들로 들썩이기도 했다. 계곡마다 풍요롭게 내려가는 물소리만 들어도 저절로 마음이 뻥 뚫어지곤 했다. 오래도록 지속된 장마 아닌 물폭탄의 세례는 온 세상의 지반을 약하게 만들어 놓기도 했지만 수마가 삼키고 간 수많은 것들로 인해 희망의 끈도 놓고 망연자실 정신줄도 놓아버리게 했다. 얼어붙은 마음의 문은 한파에 비교가 될까 싶다. 그래도 속속 수해복구에 너도 나도 발벗고 도움의 손길이라고 펼치면 그동안에 힘들었던 아주 작은 일부분이라도 나눔의 기쁨을 함께할 수 있으려나 했다.

 

때아닌 복병처럼 잠잠해지려나 했던 코로나가 그나마 희망의 손길도 끊어버리게 하다니 안타까움은 또다른 안타까움을 낳았다. 망연자실 희망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지경의 이재민들을 강건너 물구경하듯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 현실에 직면했다. 구조의 손길도 거절해야 하는 심정 당해보지 않는 사람은 모른다. 안스럼의 극치를 요즘 맛보고 있음에 그저 할말을 잃는다.

 

재난안전문자는 실시간으로 들어오고 그 문자를 접하면서 언제 어디에서 전염될지도 모를 코로나 때문에 공포가 나날이 증폭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월속의 시간은 흐르는 물처럼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코로나에 대한 순간의 공포는 머릿속에 낙인되어 마음도 정신도 제자리가 어딘줄도 모른체 갈팡질팡의 혼란 속에 하루하루를 모두가 버텨내고 있다. 코로나 증상 중에 무증상이 무섭다고 하듯이 한번 걸리기라도 한다면 그 후유증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또 다른 고통의 연속으로 평생을 힘들게 살아가야만 한다고 하는데 그 또한 공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조심 조심을 한다해도 누가 무증상이인지 모르니 답답하긴 매한가지다. 창살없는 감옥이 이런 거구나 싶을 만큼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이 무섭게 느껴진다고 하니 또 이세상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는 이색적인 진 풍경이 아닌가 싶다.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살아가야한다는 이야기도 먼 옛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닐까 은근 걱정도 앞선다. 마스크 쓰는 것이 생활화 된 것 같은데 쓰는 자체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그래도 나름 성인들은 견딜만 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한 어린아이들에겐 불편함 그 자체가 지옥이 아닐까 싶다. 씌어줘도 어느새 벗어 버리고 반복해 봐도 소용이 없다. 울고 불고 난리도 아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서글프다. 요즘처럼 덥디더운 날에 무슨볼일인지 몰라도 어린아이에게 숨이 차오를 정도로 힘듦을 인내하며 저마다 마스크를 쓰고 숨을 고르며 거리를 오가는 모습이 애처롭기 그지 없다. 가끔은 안경위로 뿌옇게 김이 차 올라 앞도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황을 경험하면서 밖에 볼일을 볼라치면 몇 번의 고심을 하고 또 해본다. 이런 날들을 먼 훗날 힘들게 이겨낸 시절이 있었다고 전설같은 이야기였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날을 희망 너머 희망을 갖고 살다보면 꼭 그런 날 올거라 믿고 또 믿어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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