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잡이 하는 날

남상희 | 기사입력 2020/11/04 [14:05]

돌잡이 하는 날

남상희 | 입력 : 2020/11/04 [14:05]

▲ 남상희 시인     ©

북적 북적 돌잡이 하는 날은 잔칫날 못지않게 바쁘다.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돌잡이 부모는 초대장도 만들어야 하고 초대할 손님도 생각해야한다. 가족은 물론이고 친척, 지인, 친구 모셔놓고 그날의 주인공 돌잡이는 무엇이 될지 제일 관심거리다. 커서 어떤 사람이 될지를 점치는 일이다. 부모의 바람대로 성장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마음의 위안은 삼을 수 있기 때문에 괜찮다는 직업의 도구들을 가지런히 담아서 주인공 앞에 놓는다. 연필을 잡을까? 지폐를 잡을까? 청진기를 잡을까? 아니면 마이크를 잡을까? 무병장수를 위해 실타래를 잡을까? 이것저것 신기한 것들이 바구니에 한 가득이다. 그래서 더욱 모두가 궁금증을 자아낸다. 엄마의 바람은 의사가 되었으면 하고 아빠의 바람은 아들 녀석이니 적어도 판검사다. 할아버지 할머니 바람은 오직 무병장수다.

 

그와 달리 주인공은 지폐를 덥석 잡는다. 모두가 빗나간 바람이다. 사실을 돌잡이는 오늘 처음 지폐를 본 모양이다. 바람이 빗나가긴 했어도 부자 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위안을 삼는다. 자식을 여럿 키우다 보면 이런 자식 저런 자식 저마다 다 각기 다르다. 한 뱃속에서 나왔는데도 성격도 다르고 혈액형도 다르고 똑 같은 점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그저 신기할 뿐이다.

 

얼마 전에 손주 녀석의 첫돌을 맞았다. 옛날 같았으면 식장을 빌려서 성대하게 차려놓고 초대 손님으로 북적북적 이였을 텐데 시대에 맞게 조촐하게 집에서 양가 부모와 형제만 초대해서 오붓하게 돌잔치를 했다. 손주 녀석은 욕심이 많은지 청진기도 잡았다 놓고, 마이크도 잡았다 놓고, 돈다발도 들었다 놓고, 알록달록 색실도 잡았다 놓고 보는 사람들의 애간장을 들었다 놨다 해서 웃음을 자아내더니 결국 마이크를 잡고는 저 혼자 신이 났다. 진지하게 마이크를 입에 대고는 알아듣지 못하는 이야기지만 열심히 중얼중얼 한참을 소리로 응대모습을 보면서 아나운서가 되려나 보다고 제각기 정의를 내렸다. 무탈하게 일 년 잘 성장해서 무언의 대화지만 그래도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감개무량이다. 아빠가 일 년 동안 아이의 성장기를 영상에 담아 틀어놓으니 언제 그런 날이 있었던가. 실감도 나고 가슴이 뭉클했다. 꼬물꼬물 꼬물대던 모습이 일 년 새에 아장아장 발걸음을 딛는 모습이 참으로 대견하다. 울고 웃는 것이 의사소통의 전부였던 것이 요즘 들어 부쩍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목소리를 내어가며 또 다른 소통을 시작하고 있다. 어린 손주 녀석을 통해 그저 기다림을 인내심을 새삼 기르고 있다. 조금만 더 기다리다 보면 또 다른 모습으로 엄마 아빠를 감동시킬 테고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도 그 감동을 배로 안겨 줄 테니 말이다. 가을에 태어나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하고 그리고 여름. 사계절을 보내고 다시 가을을 맞이했으니 그 세월이 정말 고맙다. 세월이 고마운 것을 알게 한 것도 손주 녀석을 얻고 나서다. 뒤늦게 내 생애 철이 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를 보다보면 저절로 젊어지는 것을 느낀다. 생전 내 건강을 위해 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은연중 하고 있으니 말이다. 낮잠을 자는 시간이면 잠시 나와 힘을 기르기 위해 운동도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활력소가 저절로 생겨서 은근 마음도 정신도 젊어진다. 어쩌다 유모차에 태워 놀이터에 나가기라도 할라치면 옷차림도 신경 쓰게 된다. 누가 이런 모습을 보고 뭐라 하지 않았는데도 젊은 티를 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혼자 웃기도 한다. 놀이터에 가면 어린아이 눈에 비치는 형아 누나들이 좋은가 보다. 보는 눈망울이 다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녀석을 보면 눈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또래의 친구가 필요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려면 또 시간이 필요하다. 무탈하게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다보면 금방 신발도 신고 아장아장 놀이터를 누비고 다닐 녀석을 상상하면 더 많은 운동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뭇잎이 무성했던 나무아래 어느새 낙엽이 쌓였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고 이는 바람이 속삭이고 간다. 하늘은 깊이를 잴 수 없도록 푸르고 어느새 계절을 또 타고 있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때 이른 가을을 타는가 보다. 계절마다 특색이 있어 좋은데 하필이면 가을은 낙엽이 굴러가는 소리까지 신경이 쓰인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꽃망울을 보면 전엔 이유 없이 눈물샘이 터지곤 했었다. 세월 따라 무딘 감성을 받아들이며 세월 속에 나이는 못 속인다고 답을 내기도 했다. 그랬던 내게 다시 봄날처럼 마음에 변고가 생겼다. 아마도 그 이유가 있다면 어린 손주 녀석을 만나고부터 시작된 것은 아닐까 싶다. 처음 만나던 날도 기뻐서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다. 돌을 맞이하기 까지 꼬박 삼백육십오일을 함께 하면서 마음은 아이처럼 변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돌잡이 하는 날 함께 녀석과 미래를 점치기도 해봤다. 무엇을 잡았던 오래도록 친구하기로 마음을 열고 오늘도 눈인사로 새벽을 열고 하루를 또 시작한다. 내년 이맘쯤엔 아마도 할머니라는 이름 석 자를 내게 부르며 달려와 안길 녀석을 위해 국어사전이 되어야 한다. 온종일 손주 녀석의 손가락 끝을 응시하며 열심히 단어를 읊어 대며 행복에 흠뻑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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