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고민

남상희 | 기사입력 2020/12/03 [13:06]

행복한 고민

남상희 | 입력 : 2020/12/03 [13:06]

▲ 남상희 시인     ©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아침저녁으로 기온의 차가 제법 난다. 마지막 가을걷이를 하려면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한데 묵직했었던 달력이 새털처럼 가볍다. 한해를 정리해야 하는 달이 그새 다가오고 말았다.

 

세월이 참 빠르다는 것을 요즘 들어와 부쩍 느낀다. 무성한 잎새들을 자랑했었던 아름드리나무 들은 가지 끝에 매달린 잎새들을 바람에 하나둘 털어 내듯 하더니 며칠 새 다 떨어내고 앙상한 가지 끝에 그나마 달랑 달린 마지막 잎새마저 털어 내려 한다. 봄소식 전해들은 지 엊그제 같았는데 말이다. 바람 따라 구름 따라 흘러가는 세월 따라 세상은 돌고 돈다고 나무들도 이치를 깨닫고 새봄에 더 멋진 모습으로 만날 것을 약속이라도 했나 보다. 자연의 이치가 그렇다면 순리에 따르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인생사는 복잡한 것은 여전하기만 하다. 다 해결이 된듯하지만 돌아보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된 것이 하나도 없다. 이런 것이 정답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사는 무지함 들이 유난히 마음속에 들어와 쌓인다. 예부터 집안에 대사가 있게 되면 그 대사가 끝날 때까지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선인들의 가르침을 알면서도 설마가 사람을 잡는다고 당해보지 않으면 그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지내 놓고 일리가 있었음을 깨닫는 순간 후회는 없어야 함도 알게 된다. 차후엔 절대로 그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망각 속에 사는지라 또 실수 아닌 실수를 거듭하면서 사는 것이 인생사가 아닐까 싶다. 천기를 알 수 없으니 전생도 미래도 그저 알지 못하니 미지의 세상을 살아가면서 유수와 같은 세월 속에 묻어둔 꿈을 다음 해는 펼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산다.

 

주부라면 월동준비 중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면 아마도 김장을 준비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어릴 적 겨울 김치 하나로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 기억이 난다. 얼음이 동동 떠 있는 동치미도 생각난다. 요즘은 그런 맛을 볼 수가 없어 아쉽기도 하다. 주부라는 이름만 내 세웠지 한 번도 맛깔스러운 겨울 김장 그리고 동치미를 만들어 보지 못하고 살아 온 것이 나만 그런 것을 아닐진대 늘 마음에 걸렸었다. 김치 담는 일이 쉽지 않을 거로 생각했었는데 며칠 전 난생처음 김치를 담갔다. 손수 재배한 것은 배추와 무 그리고 마늘과 파 정도면 되는 줄 알았는데 준비할 재료가 참 많기도 했다. 하루 꼬박 준비해서 완성품으로 나오는데, 이틀이 걸렸다. 몸살 후유증이 며칠째 남아 있기는 하지만 해마다 이맘쯤이면 늘 숙제로 남았었는데 그 숙제를 해 놓고 보니 뿌듯하긴 하다. 지인 도움이 없었다면 생각지도 못했던 겨울 김장은 온 가족이 맛나게 먹고, 그 맛의 평가를 기다리는 마음 또한 은근 걱정이다. 내년에도 또 그다음 해도 계속해서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숙제로 다시 남는 것은 아닌지 은근 걱정도 된다. 이 또한 행복한 고민이었으면 좋겠다. 매년 얻어먹었으니 답례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친정엄마한테도 한 통 친정 언니들한테도 한 통씩 나머지는 자식들이랑 나눠 먹어도 넉넉하니 부자가 된 기분이다. 멀리 사시는 큰 사돈께서 해마다 여러 가지 김치를 담아서 택배로 보내주시곤 했었는데 올부터는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했는데도 한 통을 담아서 택배로 보내 주셨다. 나눔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도 행복의 첫걸음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넉넉한 김치를 보면서 경기가 어려워 못 담았을 이웃에게 나눌까 싶어 행복한 고민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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