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이불

김영희 | 기사입력 2021/11/02 [10:50]

어머니의 이불

김영희 | 입력 : 2021/11/02 [10:50]

▲ 김영희 시인     ©

11월 1일 십일월이 나란히 서서 우리를 맞이한다

 

자주 내리던 가을비에 갑자기 0도까지 뚝 떨어지면서 빠르게 단풍이 든다. 단풍이 들기도 전에 낙엽으로 떨어져 수북이 쌓이기도 한다. 한쪽에서는 영산홍도 피고 장미도 피고 있다. 요즘은 아침마다 안개가 짙다. 이른 아침에 걸으면 안개가 만져질 것 같다. 안개 속에서 해가 뜨면 안개도 이불처럼 포근해 보인다. 낮에는 따스하고 밤에는 춥다. 그래서 조금 두꺼운 이불로 바꾸었다. 어머니가 브라질로 가시기 전에 준 분홍 이불이다. 날씨가 추워지는 늦가을 부터는 해마다 어머니가 남긴 이불을 덮는다. 그 이불을 덮으면 어머니 마음처럼 포근해져 아기처럼 소록소록 잠이 든다. 어머니의 사랑처럼 부드럽고 편안하기 때문이다. 이불을 덮고 어머니 꿈을 꾸는 날이면 어머니가 보고 싶어져 영상통화를 한다. 어머니는 겨울이 없는 브라질을 좋아하신다. 한국이 아침 7시면 브라질은 저녁 7시여서 아침 저녁에만 통화를 한다. 어머니를 모시고 간 올케와 조카도 소식을 자주 전해온다. 통화가 끝나면 예쁜 이불에 풀 먹인 하얀 홑청을 꿰매던 어머니 생각이 난다. 풀 먹인 홑청을 어머니하고 마주잡고 잡아 당기며 즐겁게 웃던 일이다. 그날 밤이었다. 좋은 냄새가 나는 이불을 덮고 우리 형제는 서로 엄마를 차지하려고 이불 속에서 법석을 떨었다. 어머니의 따듯하고 넓은 등을 차지한 나는 떨어질세라 꼭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나는 예쁜 이불을 보면 사고 싶어진다. 여러 행사에서 받아온 고운 이불도 몇 된다. 그래도 계절이 바뀌면 이불 욕심이 생긴다. 결혼 초에도 맘에 드는 이불이 있으면 사기도 했다. 그러나 술고래에 끽연가인 남편은 술 취한 상태로 누워 담배를 피우다 잠이 들기도 했다. 모두 잠든 밤이었다. 잠결에 이상한 냄새가 나서 일어나보면 이불에 담뱃불이 붙어 타는 냄새였다. 그런일이 여러번 있었다. 그래도 불붙기 전이라 무사히 살아났다.

 

옛 생각을 하면서 아침부터 이불을 세탁해 널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이불 세탁을 더 자주해서인지 상하수도 요금이 세배가 된다. 보송보송하게 마른 이불을 걷어들이고 오후에 밖에 나가 보았다. 몇몇 사람이 가을색 이불을 하나씩 사서 들고간다. 가다가 들마루에 앉아 첫날 밤 이불 속 이야기 꽃을 피운다. 뭉게 구름이 그들 머리 위를 둥실거린다. 건들바람도 옷자락을 슬쩍 부채질 한다. 가을 햇살이 그들의 등을 어루만진다.

 

과수원 길가 조그만 밭에는 마늘 심는 모습이 보인다, 마늘은 가을에 심어 흙에서 뿌리를 내려 겨울을 나고 봄에 싹이 난다. 흙이 겨울을 덮어주는 생명의 이불이다. 꽁꽁 어는 얕은 흙 속에서 겨울을 나야 마늘이 되는 것이다. 마늘이 그만큼 강해서 몸에 좋은 것일까. 보리도 벌써 씨를 뿌려 흙을 덮고 겨울 날 준비에 들어갔다.

 

한낮은 밖이 집보다 따듯하다. 참새가 긴 전깃줄에 앉아 나를 바라본다. 새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주홍 가을 셔츠를 입은 허수아비가 참새를 바라보며 히죽 웃는다. 하늘에는 매 한 마리가 우아하게 날고 있다. 주렁주렁 달린 사과나무는 나날이 가벼워져서 겨울 잠 잘 준비를 한다.

 

해가 지니 바로 추워진다. 서둘러 집에 와 보니 우편함에 세 권의 책이 들어있다. 현관문을 여는데 순간 냉기가 훅 느껴진다. 가을들어 처음으로 보일러를 틀어본다. 소리가 요란하다. 비싼 기름값 아끼려고 조금 두터운 이불을 덮는다. 어머니가 쓰던 이불이지만 새 거다. 어머니가 남긴 이불이 내게 마지막 선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눈이 시리다. 그래도 구순 어머니는 건강하셔서 감사하다.

 

아무리 꽃잎 같은 이불이 있어도 같이 덮을 사람은 없다. 밤이 점점 추워지는 날이면 이불 속 따스한 이야기가 그리워진다. 아직도 예쁜 이불을 보면 눈길이 자꾸 간다. 어머니가 남긴 이불이 없었다면 더 허전했을 것이다.

 

이불을 덮으면 어머니가 들려주던 다정한 이야기가 들리는 듯 하고 어머니가 덮어주던 손길이 느껴진다. 요즘은 난방이 잘 돼 춥지 않게 살 수 있다. 그래도 나는 어머니의 이불을 덮기 위해 방을 춥게 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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