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면 엄마의 엄마로 태어나고 싶다

신옥주 | 기사입력 2021/11/30 [10:13]

다시 태어나면 엄마의 엄마로 태어나고 싶다

신옥주 | 입력 : 2021/11/30 [10:13]

▲ 신옥주 주부독서회원     ©

이번에 독서모임에서는 일본의 천재 소녀작가라는 칭호가 붙는 스즈키 루리카의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을 읽게 되었다. 14세의 나이로 이 책을 출간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작가는 초등학교 4, 5, 6학년에 걸쳐 일본 대표 출판사에서 주최하는 '12세 문학상' 대상을 3년 연속 수상하며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신인 작가의 작품이 주목받기 어려운 일본 문학계에서 이례적으로 출간 직후 언론과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1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고 한다. 열한 장의 자필 원고에서 시작된 소설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은 14살에 출간한 첫 소설집이라고 해서 단편단편이 모인 것이라는 생각이었는데, 단편같은 장편의 소설이며 지루함이 일도 없는 책이었다.

 

주인공 하나미(보통 하나라고 부른다)는 엄마 다나카와 둘이 사는 모녀가정의 초등학교 6학년이다. 엄마는 남자들도 힘들게 일하는 건설공사현장에서 땀흘리며 열심히 돈을 벌어오고, 동네 슈퍼에서 반값 할인하는 시간에 장을 보고, 은행나무에서 은행이 떨어지는 시기에는 배를 채우기 위해 은행을 주우러 다니는 생활을 한다. 가난하고 언제나 돈이 부족하고 굶주리는 장면들로 가득차 있는데도 엄마와 하나 둘은 그 누구보다도 밝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하나 엄마의 과거는 드문드문 나오는데 고아로 자라면서 시설과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았다. 학대받는 아이에 대한 기사를 모으고 공양을 하는 것을 보면 엄마도 예전에 학대를 받은 시절이 있겠거니 추측하게 만드는 장면이 있지만, 자세한 과거는 물론 하나 아빠와의 추억도 나오지 않는다. 오로지 먹을 것에 집착하는 모양이라 처음에는 추하게 느꼈는데, 읽다보면 그녀의 삶의 방식이 이해가 된다. 하나의 친구가 입시에 실패하고 죽으려 할 때도 말한다. "슬플 때는 배가 고프면 더 슬퍼져. 괴로워지지. 그럴 때는 밥을 먹어. 혹시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슬픈 일이 생기면 일단 밥을 먹으렴. 한 끼를 먹었으면 그 한 끼만큼 살아. 또 배가 고파지면 또 한끼를 먹고 그 한 끼만큼 사는거야. 그렇게 어떻게든 견디면서 삶을 이어가는거야."

 

그동안 내가 미혼모에 대한 많은 편견을 가졌다는 것을 일깨워준 소설이었다. 평소의 나는 여성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어느 정도 성숙하지 않고 아이에 대한 책임이 없이 출산을 한다면, 그 아이는 불행하리라고 단정을 내렸다. 하나의 엄마는 미혼모라고 아이를 방임하지 않으며, 쉬운 길이 아닌 공사 중노동을 하면서도 꾀를 부리지 않고 남자들과 동등하게 일을 해서 돈을 받는다. 비싼 외식은 하지 않지만 기회가 되면 둘이 조촐하게 축하를 한다. 세들어사는 집의 은둔형 외톨이 아들과 소통하는 하나 덕분에 아들이 세상에 다시 나올 용기를 갖게 만들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받은 물건을 하찮게 여기지 않고 소중하게 여긴다. 엄마의 재혼이 자기 때문에 딸린 식구 때문에 틀어졌다는 오해를 한 뒤에 자살을 결심하기도 하고 스스로 시설에 들어가서 엄마의 행복한 삶을 찾아주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물론 작가가 그 나이라서 가능한 감성이겠지만, 너무 단순하면서도 담담하게 가슴을 찌르는 장면들이었다.

 

나는 다시 태어나면 엄마 딸로 태어나고 싶은지 생각하다가 반대가 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스물다섯에 해방을 맞고 서른에 전쟁을 겪었다. 늦게 아버지를 만나 우리 삼남매를 낳고 기르고 집안 대소사를 챙기고 허리를 펴니 어느새 환갑이더라고 말씀하신 때가 있었다. 엄마 시절에는 환갑도 크게 했는데 우리 집은 자식들이 나이가 너무 어리고 다들 저만 알아 환갑은 생각도 안했다. 결혼 삼 년만에 시어머니 환갑을 하게 되었는데 엄마는 나는 저런 잔치 한 번도 못했는데 하며 말끝을 흐렸다. 모자란 이 딸은 그 말뜻도 모르고 해해닥거리며 시어머니만 챙겼더랬다. 나는 엄마의 엄마로 태어나고 싶다. 내가 받은 모든 것을 다 해주지는 못하겠지만, 근사한 생일상도 해드리고 싶고 맛난 것도 먹으러 가고 싶고 두 손 잡고 여행도 가고 싶다. 엊그제 엄마 기일에 산소에 다녀오면서 뒤통수가 어찌나 부끄럽던지 눈물흘리는 것도 가증스럽게 느껴져 울지도 못했다. 다음 생이 있다면 정말정말 엄마의 엄마로 태어나고 싶다. 엄마, 보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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