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6일, 현충일에 팔천고혼위령제를 같이 지내면 어떨까?, 충주에서...탄금대 ②

우보 김희찬 | 기사입력 2023/05/16 [14:01]

6월 6일, 현충일에 팔천고혼위령제를 같이 지내면 어떨까?, 충주에서...탄금대 ②

우보 김희찬 | 입력 : 2023/05/16 [14:01]

 

6월 6일은 현충일(顯忠日)이다. 국가가 정한 기념일이다. 기념(紀念)이라고 하지만 추념(追念)의 의미가 더 강할 것이다. 그런데 하나 생각해 볼 일이 있다.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고 충주에서 있었던 <탄금대전투>, 그 날짜가 4월 28일로 기록되었다. 음력이다. 그것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6월 7일이다.

 

조선시대에도 위령제 비슷한 일들이 계속되었지만, 한동안 충주에서는 남모른 척했다. 고(故) 장기덕 선생님 생전에 몇 가지 일들을 제안한 일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팔천고혼위령탑>이라도 만들어서 그날의 억울한 희생을 당한 충주 사람들과 조선 사람들을 생각하며 역사를 되새겨 보자는 생각이셨다. 그 결과 탄금대 충혼탑 옆에 <팔천고혼위령탑>이 세워졌다.

 

그것을 계기로 충주문화원에서 매년 음력 4월 28일을 찾아서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작년에는 제430주기로 5월 28일에 위령제를 지냈다. 올해 음력 4월 28일은 6월 16일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에 대한 위령제이니 조선시대 식의 날짜를 맞춰 매년 날짜를 달리하며 계속 그렇게 가야 할까? 또는 평산신씨 대종회나 순천김씨 대종회, 육군 제3105부대 등 그날의 전투에서 희생한 신립 장군이나 김여물 장군을 대표로 향토사단이 같은 육군이라고 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위령제가 진행되어야 하나?

 

항상 의문이었고, 그에 대한 대안도 생각해 왔다. 그 대안이란 것은,

 

1592년 음력 4월 28일은 양력 6월 7일이다.

 

조선시대 식의 제사법에 따르면 전날 자시(子時) 그러니까 6월 6일 밤 11시부터 6월 7일 새벽 1시 사이에 제사를 지낸다. 그 날짜를 꼭 음력 4월 28일에 맞춘다고 하면, 전날인 음력 4월 27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현대식으로 6월 6일 현충일에 충혼탑 참배도 중요하지만, 그 옆의 팔천고혼위령탑에서 위령제를 동시에 지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나라를 지킨 군인 개념으로 보면 1592년이 훨씬 앞서고, 훨씬 선배고, 훨씬 먼저 이 땅 충주와 이 나라를 지키다 희생된 분들이다. 그들이 지켜낸 이 땅과 이 나라를 위해 해방 후에 희생된 분들에게 그 자초지종을 소상히 고하고 양해를 구한다면, 충혼탑에 잠들어 있는 영령들은 100% 찬성할 것이다.

 

6월 6일 현충일에는 기관 단체장 등 일군의 사람들이 충혼탑 앞에 모여 묵념을 올리고 헤어진다. 그게 끝....

 

매년 음력 날짜를 찾아 매년 날짜가 바뀌는 <팔천고혼위령제>에는 일부 기관 단체장과 신씨 김씨 문중 사람들의 집안 행사처럼 보인다. 그 모양새도 그러려니와 그 의미조차도 퇴색된 느낌이다.

 

그래서, 충주에서는 과감하게 6월 6일 현충일을 맞아 <팔천고혼위령제>를 먼저 지내고, 그 뒤에 <충혼탑>에 참배하는, 지극히 충주적인 기림 행사로 새로 다듬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참고로, 1956년 <충혼탑>이 건립될 당시의 기사 두 개를 추려 올린다.

 

【탄금대에 충혼탑(忠魂塔)】

 

오는 9월 1일에 제막식

 

멸공전선에서 싸우다가 호국의 신으로 화한 충주시 중원군 출신 600여명의 전몰 군인과 순직 경찰관의 명복을 빌고저 충주시 탄금대산에 충혼탑(忠魂塔)을 건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사업은 충주군내 3천여 제대장병과 상이용사들이 주동이 되고 있는데 기금은 과거의 전우애를 다시 살려서 푼푼이 모은 성금과 특별성금으로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바 오는 9월 1일에는 제막식을 거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동 충혼탑은 높이가 30척인데 공사비 총액은 150만환이라 한다. (충북신보. 제866호. 1956. 8. 29. 2면 2단)

 

【충주시 탄금대(彈琴臺)에 충혼탑(忠魂塔) 건립】

 

제막식 거행코 명복 기원

 

【충주에서 신현무 본사 특파기자 발】 조국의 위기를 구출하여 국가의 운명을 살리고자 자기의 생명을 초개와도 같이 바쳐가며 멸공전선에서 용전분투하다 국토통일을 원한으로 남겨놓고 호국의 신으로 화한 전우들의 충혼을 길이 영접천혼(迎接遷魂)하고저 충주 참전전우회원과 상이용사회원들의 눈물로써 푼푼이 모인 돈으로 작년 10월 10일부터 착공한 충혼탑은 순 화강석으로 높이 45척의 장대한 공사가 드디어 9개월 만에 준공되어 9월 1일 오전 11시부터 유서깊은 탄금대 용미봉(龍眉峯)에서 제막식이 거행된 것인데 600여명의 유가족들은 자기의 아들 혹은 남편 등의 영혼을 마음속 깊이 불러보고자 숨가뿐 발걸음을 재촉하며 산마루턱에 도착하자 충혼탑을 바라보며 목이 메여 대성통곡하는 사람 혹은 고인의 이름을 부르며 걸음을 멈추는 사람 모두가 측은하고 가슴 아파 하였으며 1,500여를 넘는 관중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것이었다.

 

맑게 개인 가을 공기를 헤치고 그리웁던 가족을 찾아오는 듯 구곡단장의 주악소리와 함께 제막식이 되자 충주 출신 군경민 600여 주(柱) 영혼을 영접한 성탑은 이 대통령의 명력친필(銘力親筆)이 도타운 가을 햇빛을 담뿍 받아 유난히도 광채를 띄우고 있었다. (충북신보. 제872호. 1956. 9. 5. 2면 5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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