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눈에 선한 어머니를 마음에 새기며 어머니를 가만히 불러봅니다. 어머니! 가만히 불러만 보아도 가슴이 벅차 오르네요. 하루하루 지날수록 가신 날보다 더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사람이 본래 그런건가 봅니다. 두고두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럴 것 같습니다.
1932년에 괴산 시골에서 나고 자란 어머님은 결혼하고 충주로 오셨다. 삼남매와 오순도순 살던 어느 날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홀로 삼남매를 키우셨다. 지금도 여자가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기가 힘든데 그 시대엔 말하면 무엇하랴. 나는 1989년에 충주로 와서 시댁에 들어왔다. 당시 홀어머니와 눈이 먼 시할머니와 몇 달전 사고로 남편을 여읜 홀시누를 두고 군대에 가야하는 남편의 부탁으로 결혼 전에 충주에서 함께 살기로 약속하고 충주에 왔다. 세상을 좀 알고 약았다면 장교였던 남편을 따라가서 살았겠지만, 당시는 순진하고 약지 못해 아무도 아는 이가 없는 지역에 와서 장래 시누랑 함께 방을 쓰며 삼년을 살고 결혼했다. 그때는 나보다 시누가 더 걱정이었다. 그래서 함께 지내며 다섯 살, 일곱 살 시누의 아이들을 돌보며 일을 하며 지냈다.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지금은 시누가 언니보다 더 친하고 내 속을 알아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어머니께서는 흔한 말로 청상과부였는데, 큰딸이 똑같은 상황이 되자 넋이 나갈 지경이었지만, 딸과 외손주들을 부양해야한다는 일념으로 더 열심히 일하셨다. 나는 어머님이 동네 어른들과 관광을 가거나 놀러 다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언제나 가족을 위해 본인의 행복을 저당잡고 살아오신 어머니를 위해 내가 할 수있는 방법은 맛난 음식 사드리고 휴가를 함께 가는 정도였다. 밥도 못하는 며느리를 맞았어도 항상 생일에는 미역국과 잡채를 마련해 생일상을 차려주신 어머니. 당신 생일에도 직접 요리를 하셨지만, 언제나 즐겁게 웃으며 우리를 위해 노력하신 어머니. 그런 어머니와 34년동안 살았다. 몇 년은 따로 산 적이 있지만 삼십여년을 한 집에서 동고동락하며 미운 정 고운 정이 더께가 앉을 정도로 많이 쌓였다. 친정 엄마와 산 세월이 이십년인데 그보다 훨씬 많이 산만큼 추억도 참 많았다.
치매가 오면서 가족을 잊기도 하고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별하지 못하는 일이 많았지만,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며느리인 나를 이뻐하셨다. 내가 어머니와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과연 어머니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온전히 자식을 위해서만 살 수 있는지 생각했지만 자신이 없다. 아니 도망가 버릴 정도로 마음이 약한 사람인걸 나는 잘안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얼마나 위대하고 멋진 분인지 지나치게 알고도 남는다. 나는 나이가 많으니 무조건 존경해야 한다는 소신이 있지 않다. 나이보다는 그 사람의 됨됨이와 행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생각해도 내가 본 어느 어른보다 존경스럽고 존경할 가치 있는 분이다. 멋지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시댁 식구들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되었다. 자기만 안다고 생각했던 남편이 사회생활을 잘해 많은 지인들의 도움과 방문이 있었다. 엄마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큰 시누까지 잘못될까 걱정했지만 슬픔속에서도 의연히 대처하는 모습도 있었고, 암으로 고생했을 엄마가 덜 아프길 바랬던 둘째 시누가 오열하는 모습도 있었다. 생전에 어머니께서는 친정 식구들을 충주로 데려와 학창 시절을 보내게 도왔는데 그 사람들이 모두 찾아왔고, 심지어 19년전 하숙생들까지 방문했다. 요양 병원에서 일하시던 보호사 두 분이 왔을 때는 나의 어머니가 마지막까지 얼마나 품위있게 사셨는지 알 수 있었다. 너무 존경스러운 분이다.
어머니, 어머니와 34년이라는 짧지 않은 인연을 함께 할 수 있어 정말 행복했습니다. 언제나 할 말을 다하는 되바라진 며느리이지만 그래도 옳은 말이라며 받아 주시던 어머니. 저는 어머니가 평생 돈 걱정없는 부잣집에 태어나 원없이 편하게 사시길 바래요. 지금의 모든 것을 잊더라도 최고로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저작권자 ⓒ 충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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