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속에 내 모습

남상희 | 기사입력 2023/08/07 [09:45]

세월 속에 내 모습

남상희 | 입력 : 2023/08/07 [09:45]

▲ 남상희 시인     ©

장마가 길지는 않았어도 국지성 비가 요즘 자주 내린다. 무더위는 매년 오는데 올핸 더 습하고 견디기 어려울 만큼 힘들 때가 잦다. 다행히 주말엔 온 가족이 들썩이고 온종일 시원하게 돌아가는 에어컨 덕분에 시원하게 보낼 수 있어 좋다.

 

얼마 전 큰애가 평수보다 적고 오래된 에어컨은 전기료가 많이 나온다며 최신형으로 들여놓았다. 가끔은 잘해주지도 못했는데 나름 커서 자식 노릇을 하는 모습을 보면 미안함이 앞선다. 넉넉한 형편이 아니라서 언제나 절약을 궁색함만 보여줬던 세월이 어쩌면 아이들한테 자양분이 되었던 게 분명하다. 열심히 지혜롭게 살림도 잘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놓인다.

 

시간은 참 빠르다. 초인종과 함께 우르르 들어오던 손주들과의 시간은 정신을 놓아야 한다. 아래층에 행여 피해라도 줄까 싶어 눈 맞추며 뒤꿈치 들고 다녀라. 잔소리가 어린아이들한테는 스트레스임을 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것도 성장 과정에서 필요한 교육 일부임을 여러 차례 반복한 결과가 조금씩 보인다. 교육은 콩나물에 물 주기라고 했다. 은근히 조금씩 소통이 되어감에 감사한 것을 귀여움 속에 사랑스러움도 더하고 애교 만점에 눈치까지 있어 보인다. 참으로 다행이다. 커가는 아이들의 세월은 황금 같은 시간이 변함없기를 바란다. 아이들 모습 속에서 걸어온 오래전 내 삶을 찾아보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음은 세상이 그만큼 변했음을 증명한다.

 

이른 아침부터 찜통이다. 온 가족이 모였고 북적북적 삼시 세끼 먹으려니 연속해서 가스레인지 위엔 아이들이 좋아하는 옥수수도 삶아야 하고, 밭에서 금방 공수해온 호박이랑 부추 고추를 넣고 부침개도 만들어야 하고 주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큰애들의 모습이 내 모습 같아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주방 차지가 힘들고 고단했던 세월을 내어주고 나니 한 짐 내려놓은 듯하다가도 뭔가 아쉬운 것이 맘을 헤집을 때도 있다. 자라는 아이들이 희망이고 꿈이었던 그 세월만큼 우리 애들도 그런 엄마의 세월을 닮아 가고 있다. 그래도 낫다 싶은 것이 있다면 세상이 좋아지고 사회생활을 모두 다 할 수 있어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덜함에 있어 여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 참 다행이다. 사는 게 다 이런 것을 하면서도 젊어 꿈과 희망과 싸우면서 이뤄낸 가정이 지금 이렇게 행복이라는 결과물이 있기에 뿌듯할 때도 있다.

 

‘세월과 싸우지 말고 꿈과 싸워라. 세월을 밀어내지 말고 포기를 밀어내자.세월 밑에 주저앉지 말고, 세월 위에서 달리자.’ 어느 시인이 쓴 시 일부다. 언제 읽어봐도 내겐 공감이 간다. 주말 오후 아이들이 각자 제집으로 돌아가고 나서야 한가로이 혼자 남았다. 돌아간 자리마다 아이들의 흔적을 정리하다가 멈추고 그 시를 또 읽어 본다. 어쩌면 그 시 일부가 내 현실이 아닐까 뒤돌아본다. 날씨가 세월을 말하듯 그런 세월을 밀어내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살아온 지금이 참 다행이다. 늘 그래 왔듯이 우린 늘 꿈을 말한다. 그저 꿈은 커야 한다고 듣고 또 들었다. 그랬는데 똑같은 말을 누군가에게 되풀이하는 나를 자주 발견한다. 평생을 죽을 때까지 꿈을 잃으면 안 된다며 어느새 난 그 꿈을 놓아 버린 지가 언제인지 모른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내가 들어 왔던 그 꿈을 내 입으로 말하기 시작했을 때부터가 아닐까 싶다. 어린 손주들을 앞에 앉혀놓고 꿈과 희망을 운운하면서 듣거나 말거나 콩나물 교육에 열을 올렸을 모습에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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