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충주, 시장(市場)의 변화(3) <해방 및 전후 복구 과정>

우보 김희찬 | 기사입력 2023/09/09 [16:51]

90. 충주, 시장(市場)의 변화(3) <해방 및 전후 복구 과정>

우보 김희찬 | 입력 : 2023/09/09 [16:51]

 

1940년대에 들어서면 2차 대전에 따른 각종 물자의 부족으로 시장기능은 대폭 축소된다. 그리고 해방 후에는 식민지에서 벗어나며 시장구조 재편이 이루어진다. 물자부족과 생산 기반 시설의 부족에 따른 공산품이 다양하지 못한 상황에서 시장의 기능회복은 쉽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5일장의 기능을 중심으로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을 충족하며 서서히 회복되던 시장은 6.25로 인해 반 폐허 상태가 되고 다시 일으켜 세워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6.25 상황에서의 피해는 1950년 7월부터 9월까지의 3개월간 벌어진 결과로 유추된다. B29의 폭격에 관한 기억이 유종호(柳宗鎬) 선생의 회상기에 일부 그려지긴 했지만, 1954년 봄부터 시작된 시장 복구 및 재건 작업을 보면 그 피해정도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유추된다.

 

6.25 후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중앙공설시장과 자유시장의 재건이다. 1953년 8월에 충주공설시장번영회를 결성하고 도로부터 장소이전 허가를 얻었다.

 

중앙공설시장은 이 과정에서 충주경찰서의 여중 앞으로의 이전이 결정되었다.(일제 강점기부터 사용하던 공설시장의 충주경찰서 청사는 6.25시기에 폭격으로 파괴되었고, 당시에 충주경찰서 임시청사는 현재 성내동 주차장(일제강점기 성광관 자리)에 두고 있었다.) 1954년 4월 16일에 착공, 6월 15일부터 개시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총건평 1,800평에 1차 공사를 통해 155칸의 현대식 건물로 시작된 중앙공설시장은 이후 1990년대 중반까지 중심상권을 이루며 존속해 왔으나, 이후 도시 팽창과 생활양식의 변화 등으로 급격히 쇠락한 구도심의 구상권으로 남아있다.

 

▲ [자료] 약진 충주의 모습을 자랑하는 충주중앙공설시장의 면모(충북신보. 1954년 7월 27일자, <충주중앙공설시장활발>의 자료 사진) 사진 상태가 좋지 않지만, 제1R에서 중앙시장의 지금은 둥글게 휘어진 모서리 정면을 찍은 것으로 신축 개장된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자유시장은 1954년 4월 17일에 기공식을 갖고, 그해 8월 15일에 개시되어 25일에 낙성식을 거행했다. 개시 때의 자유시장 점포는 208개로 전후 복구 상황에서 새출발하여 5일장 공간과의 경쟁, 협조 관계 등을 거듭해 오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54년 하반기에 두 개의 상설시장을 축으로 시작된 충주의 상설시장 구조는 1956년에 충주시와 중원군의 행정구역 분리가 이루어졌다. 또한 충주비료공장 건설과 충북선 철도 연장ㆍ연결공사, 그리고 충주수력발전소 건설이라는 대형 사업들의 호재를 만나며 급격한 인구 팽창기를 맞는다. 그리고 1959년 7월 10일에는 성남동에 합동주차장이 신설 개장된다. 이에 따라 겨울에는 지현천변을 중심으로, 지금으로 말하면 주상복합의 2층 상가건물이 50채 들어서며 교통을 중심으로 한 소규모 시장이 형성되며 또다른 상권을 꿈꾸기도 했다. 이것의 연장으로 뒤에 남부터미널을 중심한 남부시장(현 옹달생시장)이라는 소규모 상설시장의 형성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한편 충주비료공장의 준공과 그에 따른 충주시의 현대화 작업 과정에서 변화된 연장 시장도 등장한다. 즉, 충주교(구, 대수정다리)를 기점으로 하천을 따라 난립했던 판자집을 철거하여 정비작업이 시작된 것이 1960년 10월이다. 당시 하천가에는 29호의 판자집이 있었고, 충주시와 시장번영회측과 합의하여 매호당 1만환씩을 지불하여 자진 철거하기로 했다. 이 후에 50동의 현대식 건물을 짓기로 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1962년에 가서야 완성을 보게 되어 자유시장이 확장되어 충의동 지역의 상권이 완비된 것이다.

 

또한 중원군으로 분리된 엄정면의 경우 면소재지를 중심으로 현재의 상가 건물이 새로 지어지는데, 이것이 1961년 11월의 일이다. 과거의 내창장의 장터를 중심으로 상설점포가 들어선 것이다.

 

이 시기에 지어진 건물은 지금도 그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는 곳이 많다. 간판을 새로 달고 아케이드가 쳐져 비를 피할 공간이 생겼고, 또한 모든 도로가 포장된 것을 제외하면 전체적인 공간 구조는 그대로 이다. 또한 재투자를 통한 신축 건물이 많지 않기 때문에 6.25후에 재건 복구과정에서 지어진 건물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달리보면, 100년 전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50년 전의 생활사의 현장은 그 형태가 도심 곳곳에 그대로 남아있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에, 각 시기별로 이리저리 몰려 옮겨 다니며 살아남은 5일장도 존속되고 있다. 다만 활성화라는 문제에서는 멈춘 듯 연명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 부분이 50년된 뼈대 위에 어떻게 활기를 불어넣을 것인가 하는 고민의 첫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시장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며 아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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