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충주우체국(忠州郵遞局, 현 성내동우체국)

우보 김희찬 | 기사입력 2023/09/09 [17:29]

97. 충주우체국(忠州郵遞局, 현 성내동우체국)

우보 김희찬 | 입력 : 2023/09/09 [17:29]

 

충주우체국이 예전 충주시외버스터미널 자리로 신축 이전한 지도 벌써 5년이 지났다. 우정사업본부 홈페이지에서 충주우체국의 연혁을 보면, 1895년 12월 7일 충주우체사 개국, 1949년 8월 13일 충주우체국으로 개칭, 1976년 충주시 성내동에 제자리 개축, 2014년 5월 20일 현 청사 이전 개축(충주시 국원대로 20)으로 간략히 정리되어 있다.

 

간단한 듯하지만, 연혁의 첫머리는 최근까지도 지속적인 혼란이 있어왔다. 즉, 2002년에 펴낸 <충주시지>(하권 제11편 산업ㆍ경제, 3장 사회간접자본, 3절 정보통신조 참고)에 보면 ‘충주지역 최초의 통신기관은 1897년에 설치된 충주우편취급소를 시작을 발전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라고 전제한 후, 1931년에 발행된 <충주관찰지>(奧土居天外, 1931)에 기술된 내용을 옮기고 있다.

 

<충주관찰지>의 ‘충주우편국의 연혁’ 중에 ‘당시 충주에도 한국정부의 무안우체사(務安郵遞司) 및 전보사(電報司)가 설치되어 있었다. 1905년 6월 14일에는 경성우체국(京城郵遞局) 충주출장소를 설치하여 한국 정부의 통신사무 일체를 인계받고, 다시 1906년 6월 30일에 충주출장소를 폐지하고 충주우체국이 설치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라고 하였다. 이것을 그대로 인용하며 충주우체국 연혁의 첫머리를 애매모호하게 기술해 놓고 있다.

 

나아가, 1959년에 편찬한 <예성춘추(蘂城春秋)>에서 충주우체국의 연혁을 ‘단기 4244년(1911) 10월 20일 경성우체국 충주출장소로 설립, 단기 4251년(1918) 3월 충주우편국(忠州郵便局)으로 개칭, 단기 4286년(1953) 5월 20일 충주우체국(忠州郵遞局)으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렀다.’라고 함으로써 더욱 애매모호하게 해놓았다.

 

우정사업본부의 총체적인 우편 사무와 관련한 기관의 설치 등을 따져 정리해 놓은 1895년 12월 7일을 충주우체사 개국의 첫머리로 보고 충주우체국의 연혁을 정리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특히 이것은 당시 충주의 위상과 관련하여 이해한다면 보다 객관적인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즉, 충주에 충청도관찰부가 조선초기부터 존속되어 오다가 1592년 임진왜란을 계기로 전화(戰禍)의 피해에서 회복 불능상태가 되었다. 그에 따라 1602년에 충청도관찰부가 공주(公州)로 이설되었다. 그 후 1895년 6월 23일 지방 구획을 23부제로 바꾼 부군제(府郡制)에 의해 충주부(忠州府)가 되면서 그 관찰부가 충주에 자리하게 되었다. 이어 추진된 을미개혁의 여러 사업 중에 개성ㆍ수원ㆍ충주ㆍ안동ㆍ대구ㆍ동래에 각각 우체사가 설치됨으로써 충주우체국의 연혁이 시작되었다고 보면 맞다. 하지만 그 실무 담당자인 우체사주사(郵遞司主事)의 임명은 1896년 8월에 가서야 이루어진다.

 

관보 제414호(건양 원년(1896) 8월 27일 목요)의 서임(敍任) 및 사령(辭令)에는 8월 25일자로 한성(漢城), 인천(仁川), 원산(元山), 부산(釜山), 평양(平壤), 전주(全州), 개성(開城), 공주(公州), 의주(義州), 대구(大邱), 경성(鏡城), 수원(水原), 충주(忠州), 홍주(洪州), 남원(南原), 진주(晋州), 나주(羅州), 안동(安東), 춘천(春川), 해주(海州), 강계(江界) 등 21개 우체사에 주사를 초임발령하는 기사가 보인다. 이때 충주에는 정인국(鄭寅國)과 원용규(元用奎)가 판임관 6등으로 첫 충주우체사 주사로 임명되었다.

 

관보에 의하면, 정인국은 1895년 8월 27일자(관보 152호, 9월 2일)에 처음 우체기수보(郵遞技手補)에 임명되어 우체업무를 시작한 것이 확인된다. 이후 1896년 3월 8일자(관보 267호, 3월 10일) 판임관 6등에 서임되었고, 이어 3월 10일자(관보 272호, 3월 13일)로 우체주사(郵遞主事)에 임명되어, 8월에 충주우체사 주사로 발령되어 선임자로서 사장(司長) 대리[代辨]의 임무를 수행하다가 1897년 11월 8일자(관보 791호, 11월 11일)로 무안우체사장(務安郵遞司長)으로 전보 발령되었다.

 

한편 원용규는 1896년 3월 7일자(관보 169호, 3월 10일)로 우체기수보(郵遞技手補)에 임명되어 우체업무를 시작하였으며, 3월 10일자로 안동우체사에 발령되었고 8월 25일자로 충주우체국주사로 전근됐다. 1897년 9월 1일자(관보 733호, 9월 4일)로 판임관 5등으로 승급하여 11월에 정인국이 무안우체사장으로 전보된 후 충주우체사장을 대리했고, 1898년 9월 29일자(관보 1242호, 8월 31)로 판임관 4등으로 승급, 1890년 11월 26일자(관보 1743호, 11월 28일)로 급료 3급봉(三級奉) 인상까지 확인된다. 충주우체사 첫 개국부터 4년 이상을 주사로 또는 우체사장(현, 국장) 대리로 근무하며 충주의 초창기 우편사무를 관장했던 인물로 추정되지만, 아직 자세한 상황은 알지 못한다.

 

▲ 1926년까지 사용된 충주우체국 초기 건물[자료 <최근지충주>(1915)]

첫 충주우체사 주사 정인국과 원용규 이후 정인국의 전보 후에 후임 주사들의 발령 사항은 지속적으로 확인된다. 그런데, 1895년 12월 7일 충주우체국 개국 연혁에 비추어 이듬해 8월에 첫 주사 발령이 1896년 2월에 봉기한 을미의병 호좌의진(의병장 류인석)의 충주성 공략에 기인한 것이라면, 1896년 1월 29일자로 충주소학교 교원으로 발령된 황한동(黃漢東)의 예를 대입해 볼 경우에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즉 우체사 설치나 소학교 설치가 을미개혁에 의해 추진된 정부 정책이었고, 그에 따른 사전 준비는 비슷한 시기에 진행되었을 것이다. 이미 충주우체사 설치 결정이 1895년 12월에 이루어진 상황이고, 충주소학교 교원 발령이 1월이 이루어진 점에 비추어 본다면, 공립충주소학교(현, 충주교현초등학교)의 설치 및 개교 결정 역시 1895년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제 그 일자를 확인하는 일이 남은 과제가 된다.

 

한편 1895년 12월 7일에 설치 결정이 이루어진 충주우체사의 첫 건물이 어디였을까? 지금은 충주우체국 성내동우체국으로 이름을 바꾼 그 자리가 첫 자리라면, 그 자리에서 100년 이상을 이어온 유서깊은 장소가 된다. 이것이 우체국 정책 변화에 따라 새 건물로 옮겨 이름이 따라간 지금, 성내동우체국은 도시재생사업에 따라 문화ㆍ창업ㆍ재생센터 조성을 위해 매각되어 내년에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된다고 한다. 당장 대체 공간이 없는 관계로 지금 자리에서 우체국 업무는 이루어지지만, 내년이 지난 이후에는 그곳이 100년 넘게 우체국으로 기능했다는 사실이 점점 잊히기 시작할 것이다. 인근에 있는 조선식산은행 충주지점 건물을 놓고 벌어진 일련의 상황과 견주어보면, 우리 것에 대한 의미 부여와 재해석에는 너무도 인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역이 가지고 있는, 특정 공간이 간직해온 역사 문화 콘텐츠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부족한 듯한 도시재생사업의 전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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