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금성여관(金星旅館)>을 추억하며

우보 김희찬 | 기사입력 2023/09/09 [17:31]

98. <금성여관(金星旅館)>을 추억하며

우보 김희찬 | 입력 : 2023/09/09 [17:31]

 

2018년 12월 20일 10시경에 참 반가운 전화를 한 통 받았다. 한 달 전부터 “찾아야 돼, 찾아야 돼”를 연발하시던 조준형 선생께서 “찾었어, 금성여관(金星旅館)”하면서 시작한 그 통화는 참으로 통쾌했다.

 

금성여관(金星旅館)!

 

알고 보면 별 것도 아닐지 모르지만, 내겐 개인적으로 무척 갈망하던 곳이다. 1929년을 정리하면서 남아있는 특별한 장소 중의 하나가 바로 금성여관이다.

 

“동일 오후 8시 금정(錦町) 금성여관(金星旅館)에서 집행위원회를 개(開)하고 노서호(盧緖鎬) 군 사회로써 좌기와 여히 부서결정과 토의가 있은 후 동(同) 10시에 무사 폐회하였더라.”(동아일보. 1929. 3. 29. 4면 2단. <충청남북도 기자대회 개최>)

 

로 처음 등장하는 금성여관은 그 해 5월에 가서야 구체적인 사건의 모의 장소로 드러난다. 즉 1929년 5월 경기도 경찰부에서 모(某) 비밀결사 33명을 검거하여 송국(送局)한 후, 다시 11일 밤까지 서상경(徐相庚) 등 4명의 아나키스트를 추가로 체포 압송하고, 다시 13일에 형사대를 서을 시내에 파견하여 이석현(李錫鉉) 외 4~5명을 인치하여 취조 중이라(매일신보. 1929. 5. 14. 기사 2면 4단. <충북을 중심으로 경찰부 우복(又復) 활동, 경성에서 또 5명을 검거, 무장부주의자들>)는 대단한 시국 사건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3명 중에 중국 방면에서 들어온 음성 출신의 권오순(權五淳)을 취조하면서 ‘문예운동사(文藝運動社)’라는 예술단체를 두고 그를 근거로 모 운동을 하고자 한다는 자백을 받고 추가 검거에 나선 결과 서상경을 위시한 충주 출신의 아나키스트들이 일망타진되는 결과가 연출되었다.

 

이들의 공판과정에서 밝혀진 문예운동사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건의 내용은 인류는 절대 자유요 현대 ○○[國家]제도와 같음은 그에 배치된 것이므로 모두 ○○[破壞]치 않을 수 없다는 사상을 품고 있던 피고 ◀ 권오순(權五淳) ◀ 안병규(安秉奎) ◀ 김학원(金學元) ◀ 정진복(鄭鎭福) ◀ 서상경(徐相庚) ◀ 서정기(徐廷夔) 등은 소화 4년(1929) 2월 18일에 충청북도 충주군 충주면 읍내리 금성여관(金星旅館)이라는 정운자(鄭雲慈)의 집에 모이어 표면 문예운동사(文藝運動社)라는 명칭 아래서 전기 사상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고 주의를 선전 고취하기 위하여 잡지 문예운동(文藝運動)을 간행할 결사를 조직하고 피고 김현국(金顯國)은 그같은 목적으로 조직된 것을 알고도 동년 4월 하순경에 동 결사에 가입하였다는 것이다.(동아일보. 1930. 3. 6. 2면 3단. <충북 무정부비사, 7피고 공판 개정>)

 

1929년 2월 18일에 결사(結社)한 문예운동사(文藝運動社)는 아나키즘 단체였다. 당시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던 서상경(徐相庚)은 1919년 3월에 청주농업학교 3학년에 재학중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5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었다.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박열(朴烈)과 함께 불령사(不逞社)를 조직하고, 흑도회(黑濤會)에 가입해 잡지 <흑도(黑濤)> 발행에 참여했었다. 1923년 관동대지진을 계기로 구속 수감되어 22회의 예심을 거쳐 1925년 7월에 풀려나 국내로 돌아오자마자 <흑기연맹사건(黑旗聯盟事件)>으로 지칭되는 아나키스트 검거 상황에서 주역으로 다시 1년간 옥고를 치른 인물이다. 당시 흑기연맹 사건에 연루된 충주 출신 인물로 서상경(徐相庚, 1900~1962)과 서정기(徐廷夔. 1898~1950), 서천순(徐千淳, 1901~1964)이 있는데, 이들은 한 집안 친인척 관계에 있다. 이들이 1929년에 충주에서 ‘문예운동사’라는 단체를 만들고 ‘문예운동(文藝運動)’이라는 잡지를 발간하여 사상운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준비중에 일제의 감시망에 걸려 뭔가를 해보기도 전에 다시 검거된 사건이 바로 ‘충주문예운동사사건’이었다. 그리고 그들 결사의 모임 장소가 충주 금정(錦町) 즉, 성서동에 있던 금성여관(金星旅館)이었다.

 

▲ 충주시 성서동 한복판에 위치했던 금성여관 자리. 지금은 주차장으로 조성되어 있다. 직전에 <비원>이란 한정식집이 있을 때를 기억하면 오른쪽 가건물과 정면에 기역자 한옥이 들어서 있었고, 그것이 곧 90년 전의 금성여관이었었다.  

그런데 그들의 공판 과정에서 결사장소인 금성여관의 주인이 정운자(鄭雲慈)라고 하였다. 또다른 자료에는 권애라(權愛羅)가 금성여관 경영주로 등장하기도 한다. 정운자와 권애라, 이 두 여인에 공통되는 사람은 이병철(李秉澈)이다. 이는 앙성 출신으로 1919년 4월에 서울에서 조직된 <대한민국청년외교단>의 총무를 맡았던 인물이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많은 충주 사람들이 <청년외교단>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또한 자매단체로 <대한민국애국부인회>라는 여성 단체도 조직되었었다. 이병철은 이 단체를 주도한 이유로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었고, 병을 얻어 1921년 12월에 집행정지 결정으로 풀려나 병원(大同病院)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었다. 해가 바뀐 1922년에 신여성의 상징과 같던 권애라가 그를 병원으로 찾아갔고, 결혼을 제안했다. 이병철은 이미 정운자와 결혼해 아이가 있었던 터였으나, 과감한 이혼과 재혼이 이어져 정운자는 충주로 돌아왔고, 권애라와 이병철은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1925년 봄에 권애라는 충주 앙성 이병철의 본댁으로 들어와 살게 되었다. 그리고 1928년에 권애라는 충주읍내에서 금성여관을 경영하는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권애라로 인해 이병철과 이혼한 정운자는 충주로 돌아와 금성여관을 경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것이 1922년의 일이 된다. 이후 생전의 원수같던 권애라와 함께 여관을 경영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들은 함께 금성여관을 경영하며 1년 가까이 지냈다. 권애라는 1919년 3월 당시 개성 만세운동의 주역이었고, 이병철을 찾아 구혼하기 전에 이미 모스크바에 가서 김시현(金始顯)을 만나 첫눈에 반해 약식결혼식을 올린 상태였다. 김시현은 몇 년 전에 개봉한 영화 <밀정>의 소재가 된 의열단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며, 그 역시 1908년에 충주에 와서 2년을 살다가 일본으로 유학을 간 인연도 있었다. 모스크바에서의 약식 결혼을 통해 임신한 권애라가 귀국하여 김시현의 투옥으로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되자 찾아간 것이 이병철이었고, 그 결과 정운자에게 아픈 상처를 주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두 여인이 여관을 경영하며 함께 생활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조합은 아니다.

 

1929년, 창립 5년차가 된 호서기자단(湖西記者團)의 연례 기자대회 개최지로 충주가 결정되었다. 충주에서 이 대회를 맡은 인물이 서상경과 서천순을 중심으로 한 1925년 흑기연맹 사건의 주역들이다. 그리고 동시에 <문예운동사> 결성이 추진되었다. 단체 설립과 기자대회 준비 장소가 바로 금성여관이었다. 정운자의 오빠가 정운익(鄭雲益)으로 1927년에 급서했지만, 영일(迎日) 정씨로서 지역에서 문벌가문의 후예로 충청북도 평의원을 역임하며 충주농고 설립을 주도했었다. 그런 집안의 후광에 힘입어 금성여관은 상대적으로 조선인들 중심의 안전가옥 역할을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에 만세운동 직접 참여자이고 신여성으로 주목받던 권애라가 합세한 상황에서 충주 출신의 아나키스트들이 금성여관에 모여 논의하며 준비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1929년 5월 11일에 검거됨으로써 다시 좌절되었다. 그로 인해 권애라는 6월에 여관에서 손을 떼고 9월에 정읍유치원으로 거처를 옮겨 충주를 떠나기도 했다.

 

금성여관(金星旅館)!

 

나름 특별한 의미를 가진 장소가 내내 궁금했지만, 알 수가 없었다. 20일에 걸려온 전화에서 확인된 금성여관은 성서동 한복판에 자리했던, 직전의 <비원(秘苑)>이란 한정식집 자리였다고 한다. 1929년에 잠깐 등장했던 금성여관은 그 후 요정으로 가정집으로 음식점으로 시대변화에 따라 주인이 바뀌면서 9년 전에 해체되어 지금은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뒤늦은 추억이나마, 그 장소가 가지는 의미가 되새겨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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