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아이들의 간첩 사냥

이대훈 | 기사입력 2023/09/11 [09:30]

[단편소설] 아이들의 간첩 사냥

이대훈 | 입력 : 2023/09/11 [09:30]

▲ 수필가 이대훈

<혁명공약(革命公約). 하나,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第一義)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 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군사정권은 전 국가를 군대 체제로 바꾸고, 국민들을 군대식으로 빠르게 길들여갔다.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는 연일 새로운 정책이 쏟아져 나왔고, 일제로부터 해방된 기쁨을 채 맞보기도 전에 6.25 동족상잔이라는 민족 최대의 비극적 전쟁을 치른 우리 국민들은 군사정권에 의해 또 한 번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야 했다. 공무원들은 북한과 중국 공산주의자들이 입었던 인민복과 같은 재건복이라는 옷을 입어야 했으며, 머리는 군인들과 같이 짧게 깎았고, 군대 가지 않은 교사들은 그 자리에서 밀려났으며, 군대를 가야 할 나이에 군 입대를 하지 않은 남자들은 기피자라는 낙인이 찍혀 군 당국의 단속대상이 됐다.

 

이때 학생들이 알고 있던 간첩 용의자는 지금 같으면 말도 안 될

 

첫째, 검은 색안경을 쓰고 공연히 여기저기를 살피며 서성대는 사람.

 

둘째, 학교나 관공서 또는 기차 철길에서 서성대는 사람.

 

셋째, 값이 싼 물건을 사고 고액권을 내는 사람.

 

넷째, 군부대나 관공서 등으로 가는 길을 묻는 사람 등이었다.

 

그래서 그때의 학생들은 검은색 안경을 끼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 혹시 간첩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봤고, 또 간첩을 신고하거나 잡는 사람에게는 포상금을 지급한다는 공고가 붙어있어 간첩 한 마리(?)만 잡으면 팔자를 고칠 수 있겠다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 이후 관계 당국에서는 일정 기간을 정해 모의 간첩 침투와 색출 작전이라는 것을 펼쳤는데 이 기간 중에는 모의 간첩이 학교에 침투할지도 모르니 모의 간첩으로부터 학교를 지키고 간첩이 침투할 때는 이를 색출 검거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아마 이것은 당시 학교뿐 아니라 공공기관 그리고 군부대까지 모두 해당이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니 간첩이 오죽 할 일이 없으면 학교에 침투할 것이며, 또 침투해서 무얼 어떻게 할 것인지 지금 같으면 학부모들이나 교사들이 난리를 치겠지만 서슬 퍼런 군사정권 치하에선 그 누구도 이를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학생들 한 반 정도를 야간에 교내에 대기시켜 학교를 지키고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모의 간첩 침입 방지 및 체포 작전에 돌입하기로 했다.

 

그날 밤, C 중학교에서는 실장으로 있는 영호가 다니는 3학년 1반이 학교를 지키는 당번으로 지정되었다.

 

3학년 1반의 종례 시간.

 

“차려! 경례.”

 

학급 담임인 안 명호 선생이 들어오자 실장 영호가 학생들을 정리했다.

 

“너희들도 알고 있겠지만 오늘 밤은 우리 반이 학교를 지킨다. 집에 가 있다가 저녁 먹고 밤 8시까지 학교 숙직실로 모여라. 알겠지?”

 

“예!”

 

이때 진우가 일어섰다.

 

“선생님 간첩 잡는데 그냥 오나요?”

 

“그거, 혹시 모르니까 막대기라도 하나씩 가져와 봐.”

 

“선생님, 총은 안 되나요?”

 

이번엔 동철이가 나섰다.

 

“뭐, 총?”

 

안 선생은 느닷없는 총 소리가 나오자 눈을 크게 떴다. 반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동철에게 쏠렸다.

 

“예!”

 

“너 총 있어?”

 

“예.”

 

동철이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총?” “고무줄 총이요!”

 

동철이의 이 말에 학생들이 와! 하고 웃었다.

 

“녀석은......”

 

학교 수업이 파한 후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다시 학교에 집합한 학생들은 숙직 교사의 지시에 따라 교무실, 숙직실 등에 나누어 학교에 침투하는 모의 간첩을 잡을 계획을 짜고 있었다.

 

오늘 학생들과 함께 숙직을 하는 안 명호 선생은 학생들을 두 조로 나눠 1조는 학교 정문과 후문, 교장실과 교무실을 지키도록 했고 2조는 숙직실에서 대기하다가 밤 1시쯤 교대를 하도록 지시했다. 학생들을 막 배치시키고 있는데 경찰관 한 사람이 학교 숙직실로 들어왔다. 이곳 경찰서의 정보과 민 형사였다.

 

“아이구 선생님, 이거 수고가 많으십니다.”

 

민 형사는 안 선생을 보자 수고가 많다며 악수를 청했다.

 

“아니, 이 밤에 웬일이십니까?”

 

“지나가다 학교에 불이 켜져 있고 학생들이 있기에 잠시 들렀습니다. 학교 야간 보초를 서는가보죠?”

 

“예, 이제 막 학생들을 배치했습니다.”

 

“아이고, 이것 참. 어린 학생들이 밤새 고생이 많겠습니다.”

 

민 형사는 지나가다 들렀다고 했지만 실은 학교에서 모의 간첩 침투 방지를 위한 조치를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살피러 온 것이었다.

 

“이거 좀 드시지요.”

 

안 선생은 민 형사에게 빵과 우유를 내밀었다.

 

“아니 괜찮습니다. 실은 제 아들 녀석도 이 학교에 다니거든요.”

 

“아! 예. 몇 학년입니까?”

 

“이제 1학년입니다. 저녁때 녀석이 오늘은 3학년 형들이 야간에 학교를 지킬 것이라고 하더군요.”

 

“솔직한 말씀으로 저 애들이 뭘 하겠습니까? 위에서 시키니 안 할 수도 없고.”

 

“그렇죠. 저희들은 더 죽을 맛입니다. 경찰서는 말할 것도 없고, 시청, 군청 등의 공공기관도 모두 신경을 써야 하거든요.”

 

“아이고! 그거 정말 힘드시겠습니다.”

 

“이렇게 밤새워 돌아다니다가 내일 낮엔 또 범인 잡으러 출동 나가야 합니다.”

 

“저런! 저녁이나 드셨는지 모르겠군요. 자, 어서 드세요.”

 

“예, 그럼 잘 먹겠습니다. 같이 드시지요.”

 

민 형사는 안 선생과 함께 빵과 우유를 먹고 나선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생님 잘 좀 부탁드립니다.”

 

“예, 살펴 가십시오.”

 

이때 학교에 배치된 학생들은 간첩과의 싸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해 각목, 돌멩이, 고무줄총 등으로 나름의 무장(?)을 하고 만약 모의 간첩이 나타나면 그들과 일전불사(一戰不辭)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마치 전투에 임하는 병사들마냥 의기양양한 지세로 학교를 지키고 있었다.

 

“야! 간첩을 잡으면 어떡하지?”

 

“뭘 어떡해. 죽여야지.”

 

“너, 사람 죽여 봤어?”

 

“..........”

 

“아냐, 선생님한테 끌고 가야 해. 그럼 경찰로 넘길 거야.”

 

“그런데 간첩이 정말 우리 손에 잡힐까?”

 

“그러니까 간첩이다 싶으면 이 몽둥이로 죽도록 패는 거야. 그래 잡아야지. 안 그럼 선생님께서 몽둥이를 왜 가지고 오라고 했겠어?”

 

“그래 맞아!”

 

“야. 누가 학교에 몰래 들어오거나 학교에 대해서 물으면 무조건 잡아서 선생님한테 끌고 가는 거다.”

 

학생들은 간첩이 무슨 동네 강아지나 되는 양 희희낙락이었다. 사실 모의 간첩이 나타날 것이란 말은 있었지만 그 기간 동안 어느 학교에도 모의 간첩이 출몰했다는 소식은 없었다. 그렇지만 교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만의 하나 모의 간첩이 학교에 나타나 자신들이 침투했었다는 모종의 표시를 해놓고 사라진다면 이는 학교 경비를 소홀히 했다는 책임을 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린 학생들이라도 동원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새벽 1시. 안 명호선생은 1조와 2조를 교대시켰다.

 

“아무도 안 들어왔지?”

 

“예!”

 

“길 가다 학교에 대해 묻는 사람도 없었고?”

 

“예, 아무도 없었는데요.”

 

“그래, 수고했다. 숙직실에 들어가 빵하고 우유 먹고 자라.”

 

“예.”

 

“야-! 빵 먹으러 가자.”

 

교대를 마친 학생들은 빵을 먹는다는 생각에 우르르 숙직실로 몰려 들어갔다. 그 시각, 지금까지 숙직실에서 쉬다가 교대를 한 2조 학생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각자 맡은 자리에 섰다.

 

“에이 씨. 졸려 죽겠네. 1조에 들어갔어야 하는 건데.”

 

“야, 야. 정신 차려. 지금부터 간첩들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시간이니까.”

 

“왜?”

 

“야! 어떤 간첩이 열두 시 전에 돌아다녀. 간첩들은 밤이 늦은 지금부터 활동을 할 걸.”

 

“그래도 난 간첩이 안 나타났으면 좋겠다.”

 

“왜? 간첩을 잡아야 상 탈 것 아냐?”

 

“돈도 준대?”

 

“야, 이건 모의 간첩이야. 돈은 없어.”

 

“아냐 준다고 했어.”

 

“근데 말이야. 이러다 진짜 간첩이 나타나면 어쩌지?”

 

“어쩌긴 잡아야지.”

 

“우리가? 뭘로?”

 

“이 새총이 있잖아.”

 

“애게, 그 총으로 어떻게 간첩을 잡냐?”

 

“무슨 소리. 너 내 실력을 몰라서 그래. 난 이래 봬도 백발백중이거든. 전깃줄에 앉은 참새도 잡아봤어.”

 

“정말?”

 

“그럼!”

 

“근데 간첩이 그거에 맞아 죽으면 어쩌지?”

 

“뭘 어때. 간첩인데.”

 

“죽여도 돈을 줄까?”

 

“줄 거야. 간첩이니까.”

 

학생들은 낮은 목소리로 이런 소리 저런 소리를 주고받으며 간첩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도 학교 근처에 나타나지 않고 밤은 점점 더 깊어만 갔다.

 

학생들은 심심했다. 그리고 졸렸다. 나오기 전에 먹은 빵 때문에 식곤증이 왔다.

 

“아이 씨. 왜 안 와! 오려면 빨리 오지.”

 

“이러다 오늘도 안 오는 거 아냐?”

 

“글쎄, 난 안 왔으면 더 좋겠다.”

 

“왜 상 타기 싫어?”

 

“아니, 그냥......”

 

시간은 점점 흘러 새벽 3시가 되었다. 학생들은 이젠 간첩이 우리 학교엔 오지 않을거라 생각하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어떤 아이는 학교 담 바닥에 앉아 코를 골며 자는 아이도 있었다. 학교 숙직실에 있는 괘종시계가 땡! 땡! 땡! 하고 3시를 가리켰다. 종소리에 몇몇 학생들이 놀라 눈을 떴지만 대부분 학생들은 가수면 상태로 졸며 서 있었다.

 

추웠다.

 

11월의 늦가을이라 밤엔 날씨가 제법 추웠다.

 

“아이 추워.”

 

“나도. 우리 여섯 시에 끝난다며?”

 

“응. 여섯 시면 동이 튼다니까. 간첩들도 오지 않겠지.”

 

“아, 빨리 여섯 시가 됐으면.”

 

캄캄하고 어두운 넓은 학교 운동장엔 아무도 없었다. 다만 후문 안쪽에 자리 잡은 숙직실에서만 불빛이 새어 나왔다.

 

“1조 자식들 지금쯤 모두 자고 있겠지?”

 

후문을 지키는 몇 명은 숙직실 쪽을 쳐다보며 잠을 자고 있을 1조 친구들이 부러운 듯 말했다.

 

이 시각, 집에서 잠을 자던 이 학교 교감 정 윤철 선생은 잠이 깨었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싶어서였다. 화장실을 다녀온 정 교감은 문득 학교 생각이 났다. 오늘은 3학년 1반 안 명호 선생이 숙직을 하고 그 반 학생들이 보초를 선다고 들었던 생각이 났다.

 

(빌어먹을! 중학교에 무슨 간첩이 온다고 학생들이 밤을 새게 만든담. 아니 그리고 간첩이 학교에 오면 뭘 가져간다고 그래. 학생들 출석부를 가져갈 텐가. 책상 걸상을 가져갈 텐가.)

 

여기까지 생각을 한 정 교감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거야 원, 일제 강점기 시절의 병정놀이도 아니고.)

 

정 교감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사람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대한제국 고종황제 때의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정 교감은 조선 시대에 태어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6.25 한국전쟁의 치열한 전쟁 통에도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정 교감은 조선 왕국, 일제 강점기, 8.15해방, 4.19 의거와 그리고 5.16 군사혁명 등 우리나라의 가장 격심한 격동기를 온몸으로 겪어 온 사람이었다.

 

정 교감은 일제 강점기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해방이 되어 학교 선생이 되었다가 6.25 한국전쟁 때는 가족들과 함께 부산으로 피란을 가서 죽을 고생을 하면서도 학생들을 가르친 우리나라 교육계의 산증인이었다. 그래서 정 교감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 놈들이 우리 조선 사람들에게 어떻게 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학생들에겐 아침 조회시간마다 동방요배라는 걸 강요해 일본 쪽을 향해 절을 하도록 했고, ‘고오고꾸신민노세이시(皇國臣民의 誓詞)’라는 걸 외우도록 했던 것도 알고 있었다. 또 태평양전쟁 말기엔 미군과 싸워야 한다고 죽창을 깎아 들고 싸움 연습을 하기도 했고, 미군의 공습에 대비한다고 방공호를 파고 수시로 대피훈련을 한 경험도 있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해방 이후 들어선 이승만 정권은 ‘반공 방일’이라는 구호를 학교 벽 여기저기 써 붙여놓고 ‘우리의 맹세’라는 걸 외우게 했었다.

 

첫째, 우리는 대한민국의 아들 딸,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키자.

 

둘째, 우리는 강철같이 단결하여 공산침략자를 쳐부수자.

 

셋째, 우리는 백두산 영봉에 태극기 휘날리고 남북통일을 완수하자.

 

그런데 막상 전쟁이 일어나자 정부와 나라의 지도자는 국민들을 내버리고 자신들만 몰래 남쪽으로 도망을 쳤고, 그것도 모자라 후일 수복이 되자 적의 치하에서 그들을 위해 일을 한 사람들을 부역자라고 해 온갖 박해를 가했다. 그런데 이제 군사정권 치하에선 아침 조회시간마다 혁명공약을 고창하고 모의 간첩을 잡으라고 강요, 어린 중학생들을 한밤중 추위에 떨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정 교감은 전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학교 숙직실로 전화를 걸었다. 안 명호선생이 전화를 받았다.

 

“나 교감입니다. 안 선생, 별일 없으시죠?”

 

“예.”

 

“학생들은요?”

 

“조금 전에 2조와 교대를 해서 1조 학생들은 자고 있습니다.”

 

“거 한 번 밖에 나가보시지요. 추운데 학생들 떨고 있는 건 아니요?”

 

“괜찮을 겁니다. 이제 3시간만 있으면 되니까요.”

 

“학생들 졸지 말고 잘 지키고 있으라고 하세요. 혹시라도 누군가 오면 안 되니까.”

 

“예. 알겠습니다. 제가 곧 나가보겠습니다.”

 

안 명호선생은 전화기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캐비닛을 열고 플래시를 꺼내 들었다.

 

그때였다.

 

안 선생이 플래시를 켜 들고 막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숙직실 밖에서 학생들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다음 순간 실장인 영호가 숙직실로 뛰어 들어왔다.

 

“선생님! 간첩이에요. 간첩이 들어왔어요!”

 

영호는 숨이 턱에 닿아 헐떡거리며 소리쳤다.

 

“뭐, 간첩?”

 

안 선생은 단숨에 밖으로 뛰쳐나갔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학교에선 모의 간첩을 잡는 큰일을 한 셈이었다. 밖에서는 학생들이 누군가를 에워싸고 마구 몽둥이질을 해대고 있었다.

 

“야! 이 간첩 놈아! 너 오늘 잘 걸렸다.”

 

“이 자식, 어디 맛 좀 봐!”

 

“죽여! 죽여! 간첩 놈은 죽여야 돼!”

 

학생들은 에워싼 사람을 금시라도 죽일 듯 입에 거품을 품고 거친 말을 서슴지 않고 있었다.

 

“야, 야! 모두 비켜!”

 

안 선생은 학생들을 헤집고 한가운데로 들어섰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는 땅바닥엔 누군가가 쓰러져 신음하고 있었다. 그 사람을 둘러싼 학생들은 아직도 흥분된 상태에서 땅바닥에 쓰러진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떤 아이는 그 사람에게 침을 뱉는 아이도 있었다.

 

“선생님, 간첩이에요. 간첩.”

 

“우리가 잡았어요.”

 

“야호! 우리가 간첩을 잡았다!”

 

일부 학생들은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이 바람에 숙직실에서 잠이 들었던 학생들도 모두 잠이 깨 우르르 밖으로 몰려나왔다.

 

안 선생은 플래시를 그 사람 얼굴에 비춰보았다. 학생들에게 죽도록 얻어맞은 그 사람 얼굴에선 피가 흘렀고, 안경은 땅에 떨어져 박살이 나 있었고, 온몸은 흙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플래시로 그 사람의 얼굴을 비춰보던 안 선생은 그만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이 학교의 교장선생이었던 것이다.

 

“야, 이놈들아! 이분은 교장선생님이잖아 교장선생님.”

 

안 선생의 말에 학생들은 한 번 더 놀라 쓰러진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랬다. 학생들에게 죽도록 얻어맞고 쓰러진 사람은 다름 아닌 이 학교 교장인 강 철준 선생이었던 것이다. 안 선생은 눈앞이 노래졌다. 아니 교장선생을 간첩으로 몰다니 이런 끔찍한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안 선생은 실장 영호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사연은 이랬다. 후문을 지키는 학생들이 날씨가 추워 한 군데 옹기종기 모여 졸음을 쫓고 있었는데 그중 한 아이가

 

“얘. 얘. 저기 좀 봐!”고 후문으로 통하는 길 쪽을 가리켰다.

 

학생들은 정신이 바짝 들어 길 쪽을 쳐다봤다. 그런데 그 길 저쪽에서 웬 사람이 슬그머니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 사람은 교문 울타리 쪽으로 붙어서 무언가 학교 안을 보는 듯 하다가 또 후문 쪽으로 걸어오고 그러다 다시 울타리에 붙어 무언가를 살피곤 하는 것이었다.

 

“간첩 아냐?”

 

누군가 속삭였다.

 

학생들은 온몸에 소름이 쫘악 돋았다. 간첩이라니.

 

“간첩이라고?”

 

간첩, 그렇다. 드디어 간첩이 나타난 것이다.

 

“야, 저거 우리가 잡자!”

 

“우리가......?”

 

“그래, 저거 집으면 우리 모두 상 타잖아!”

 

학생들이 이렇게 속삭이는 데도 그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 채 후문 쪽으로 서서히 그리고 조용히 다가오고 있었다. 어둠 속에 조용히 다가오는 사람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학생들은 후문 콘크리트 벽 안쪽에 몸을 숨기고 있어 밖에선 학생들을 볼 수가 없었다. 드디어 그 사람 아니 학생들에겐 간첩으로 판단된 사람이 후문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이때 실장인 영호가

 

“간첩이다!”

 

하며 앞으로 뛰어나가 몽둥이를 휘둘렀다. 동시에 다른 학생들도 일제히 뛰어나가 그 사람 아니 간첩을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 사람은 제대로 반항 한 번 못해보고 그 자리에 픽 쓰려졌다.

 

“야! 간첩이다. 우리가 간첩을 잡았다!”

 

“야! 이 간첩 새끼 죽여 버려!”

 

“밟아, 밟아!”

 

“야! 도망가지 못하게 꽉 잡아!”

 

그때 쓰러진 사람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야, 이놈들아! 난 교장선생님이야, 교장이라구!”

 

그렇지만 흥분한 학생들 귀엔 그런 소리가 들릴 리가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간첩을 잡았다는, 그래서 학교의 명예를 높이고 또 포상금을 탈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어느 학교에서도 모의 간첩을 잡았다는 소리가 없었는데 자신들이 간첩을 잡았으니 이 얼마나 기막힌 좋은 찬스인가! 학생들은 사리 판단력을 상실한 채 쓰러진 사람에게 마구 몽둥이질을 해댔다. 그리고는 실장인 영호가 숙직실에 있는 담임선생에게 알리려 달려간 것이다.

 

학생들에게 맞아 쓰러진 사람이 다름 아닌 이 학교 교장선생이라는 것이 밝혀진 순간 안 명호 선생은 할 말을 잃었다.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질 않았다. 기가 막히긴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이 간첩을 잡았다는 승리감은 졸지에 교장선생님을 죽도록 두들겨 팼다는 공포감으로 뒤바뀌었다.

 

안 명호 선생은 학생들과 함께 쓰러진 교장선생을 부축해 숙직실로 옮겼다. 뭇매를 맞은 교장의 얼굴에선 피가 낭자하게 흘렀고, 입은 옷은 마구 찢어져 속옷이 훤히 드러나 보였다.

 

도대체 이를 어쩌나. 아니 교장선생님이 왜 하필 이 시간에 아무 연락도 없이 학교엘 왔을까? 그렇지만 하는 수가 없었다, 일단 일은 벌어진 것이고 그 뒷수습이 문제였다. 안 명호 선생은 즉시 교감선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락을 받은 교감이 한걸음에 학교로 뛰쳐나왔다. 다른 선생들도 연락을 받곤 몇 사람이 급히 학교로 달려 나왔다. 누가 연락했는지 경찰도 백차를 몰고 나타났다. 일이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것이다.

 

사건의 자초지종을 들은 경찰은 일단 경비를 서던 모든 학생들을 한자리에 모이도록 했다. 그리고‘이번 일은 너희들 잘못이 아니다.’라고 학생들을 진정시켰다. 다친 교장선생은 교감선생을 비롯한 다른 선생들이 병원에 연락해 급히 병원으로 옮겼다.

 

긴급히 연락을 받은 교장 사모님께서는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려와 피투성이가 된 남편을 보곤 까무러치듯 놀라 쓰러졌다. 그리곤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했기에 교장선생도 못 알아보고 몽둥이를 휘둘렀느냐고 아우성을 쳤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말이다. 사실 이 모든 책임은 안 명호 선생이나 학생들에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며칠 후, 학교 선생들은 제정신을 차린 교장으로부터 사건의 전말을 들을 수 있었다.

 

사연은 이랬다. 그 전날. 그러니까 학생들이 모의 간첩으로부터 학교를 지키기 위해 야간 보초를 서기 하루 전 상부기관이라는 곳에서 교장선생에게 연락이 온 것이었다. 교장선생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자신이 이번 계획의 책임자라고 하고는 학생들이 야간에 보초를 설 때 교장이 한밤중에 아무도 모르게 학교에 가보라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학교를 잘 지키는지 또 담당선생님도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감시 감독하라는 것이었다. 자신들 역시 불시에 학교를 점검해서 학생들 특히 교사들이 맡은 바 임무를 소홀히 하면 해당 학교 교장에 대해 인사조치를 하겠다고 말을 했다는 것이다. 해서 교장선생은 다음 날 한밤중에 학생들과 교사들이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학교로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학교 후문 쪽으로 가까이 와도 학생들이 보이질 않아 학생들이 어디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학교 안쪽을 휘둘러보며 만약 학생들이 졸고 있거나 학교를 지키고 있지 않으면 담당 숙직 교사에게 주의를 주려고 숙직실이 있는 후문 안으로 들어가다 학생들에게 간첩으로 몰려 몰매를 맞는 변을 당하고 만 것이다.

 

이 사건은 경찰서와 도 교육청에까지 보고가 되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도 교육청에서 장학사라는 사람이 학교를 방문했다. 장학사는 교사들과 학생들을 모아놓고 교장선생님, 담당교사 그리고 학생들 모두가 자신의 맡은 바 임무에 투철한 것을 칭찬하고 격려했다. 그리고 이런 학교야말로 전국에서 간첩을 막는 방첩의 모범학교라고 주장했다. 학생들은 다시 사기가 올랐다. 그리곤 다음번에야말로 자신들은 정말 간첩을 잡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나 교장선생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다 간첩으로 오인되어 학생들에게 뭇매를 맞아 온 몸에 시퍼렇게 멍이 들고, 입술이 터지고, 이가 한 개 부러져 나가고, 갈비뼈가 두 대나 금이 가고 부러지고, 눈이 찢어지고, 안경이 완전히 박살 나고, 그날 입었던 옷이 모두 찢어지는 기가 막히는 희대의 수모를 당하고도 어디에 하소연도 못 하고 병원에서 2개월이나 입원해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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