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조사가 충주 역사의 희망이다

이규홍 충주신문 대표이사 | 기사입력 2023/09/13 [14:31]

발굴조사가 충주 역사의 희망이다

이규홍 충주신문 대표이사 | 입력 : 2023/09/13 [14:31]

▲ 이규홍 대표이사     ©

충주읍성터를 발굴조사하고 있는 국원 문화재연구원에서 그동안 위치를 잘 알지 못하여 애태우고 있던 충주사고 건물지로 추정 할 수 있는 유물이 발견 된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려 말 조선 초기 국가의 중요한 기록을 보관했던 충주사고는 조선 세종 21년(1439년) 전주, 성주사고 등 외사고가 확충 될 때까지 조선 초기의 유일한 외사고로서 중요한 기록을 보관하는 큰 역할을 했던 곳이다.

 

이러한 충주사고 건물지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 것은 2017년 시작한 국원 문화재 연구원의 발굴 조사 덕에 이루어진 쾌거이다.

 

이 발굴 조사로 인해 통일신라 토기와 기와가 함께 발굴되어 건물지의 기초 시설이 확인됨에 따라 중원경의 옛 모습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이처럼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을 추진하면 뜻을 이룰 수가 있는 법이다. 학술회의의 중요성은 깊이 인식하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추진력이 떨어질 수 있는 부분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고문서를 찾아 어떻게 해석하느냐 또한 어떠한 방향으로 바라봐야 하느냐 하는 것은 자칫 논쟁의 불씨만 덧붙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학술적으로 검토가 끝났으면 이제는 현장을 발굴하고 조사하는 것이 바람직한 확인 방법일 것이다. 물론 실패의 확률도 존재한다.

 

그러나 단 한 번에 성공하리라는 가정은 지나친 희망이다. 실패하면 제2차 추정지를 발굴하면 된다. 그래야 많은 것을 얻고 중원 문화 발상지로서의 위상을 높여나갈 수 있는 것이다. 충주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항상 중심적 위치에서 일해 왔기 때문에 많은 곳에서 유적이 나올 수 있는 확률이 높은 만큼 적극적으로 발굴 작업에 돌입해야한다.

 

호암동 충주종합운동장 건설 당시 발굴 된 수장급 묘와 청동검, 청동거울, 도끼, 창을 많은 유물이 나온 점 등의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되고 어떠한 건설 현장에서도 유적 유물이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신경을 써야할 것이다.

 

또한 우리 충주의 자랑거리이자 정신적 지표가 될 대몽항쟁 시 충주 산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중요한 전적지인 충주산성의 위치에 관한 문제 역시 빠른 시일 내에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야한다.

 

대몽항쟁은 1231년부터 1259년까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긴 전투이며 28년 간 우리민족이 침탈을 당하는 수모를 겪은 잊을 수 없는 전투다. 이러한 수난의 역사 속에서도 충주에서는 9번 침입을 당하면서도 8번 승리하는 강인한 정신력과 기백을 보여줬고 이 중 충주산성 전투는 대규모 전투에서의 승리라는 세계 역사에 빛나는 전공을 세운 전투다.

 

충주는 충주산성 전투 승리를 계기로 충주목이 국원경으로 승격하는 쾌거를 이룩했고 다인철소민 전투의 승리로 다인철소가 익안현으로 승격하는 파격적 예우를 받은 바 있다.

 

이러한 충주는 빛나는 역사를 간직하고도 지금까지 그때 대몽항쟁의 격전지였던 충주산성의 위치까지도 확인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과 충주를 지킴으로서 경북 이남의 주민들이 몽고의 약탈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였던 점 그리고 몽고의 5차 침입을 더 이상 지속시키지 못하고 전쟁을 끝낼 수 있게 한 위대한 충주산성 전투를 발굴하나 이뤄내지 못해 그때의 빛나는 전공이 빛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충주읍성에 관련한 발굴 조사에서 많은 것을 얻어냈듯이 대몽항쟁 격전지 충주산성을 발굴조사 함으로서 지금까지 충주시민들의 궁금증을 풀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또한 궁금증 뿐 아니라 충주의 자랑거리를 전 국민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고 전 세계 호국 관광지로서의 위상을 높여야 함은 물론 충주인들의 침체된 정신력을 되찾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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