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엄마
남상희 | 입력 : 2023/09/18 [08:30]
바람이 제법 선선한 아침이 좋다. 한낮은 아직 한여름이지만 성큼 다가온 초가을이 분명하다.
하늘도 조금씩 깊어가고, 누군가 조금씩 풀어 놓은 황금 물감이 들판마다 바람에 스며 들어가는 풍경이 요즘 들어서 자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초록으로 가득 채워 놓았던 봄날 화가 아저씨가 이 가을에 다시 들르셨나 보다. 가로수에 은행나무 끝자락마다 노랗게 물을 들이느라 바빠 보인다.
한가위가 코앞으로 다가왔으니 햅쌀로 명절을 쉬려면 이르게 심어 놓은 올벼가 농부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모습은 다소곳한 여인네가 맞다. 바람이 일렁일 때마다 고개를 숙인 벼 이삭이 살랑살랑 춤도 춘다. 풍성한 가을 속으로 걸어가는 마음이 바쁜 요즘 톡 톡 알밤 떨어지는 소리가 자정 넘은 고요한 밤에 정적을 깨치는 날이다. 세월은 흐르는 물처럼 말없이 흐른다. 가끔은 세차게 또는 거칠게 흐르는 물살 속에 삶이 녹아 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다. 그래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좋다고 하루를 살아도 의미가 있고 행복함이 묻어 나는 그런 삶을 곁에 두고 싶은 바람은 나만이 아닐 게다. 담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 중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그 어떤 소리보다 듣기 좋고 마음의 보약이다. 핵가족시대에서 요즘은 젊은 새댁들 만나기가 쉽지 않다. 고령화 시대 함께 더불어 사는지라 그저 자녀의 자녀가 방문하지 않으면 방문하는 그날까지 장수 시대에 살아가는 이들은 가끔은 고독 아닌 고독함에 빠져 있기가 일수다. 바람이 제법 선선해진 아침저녁 날씨를 피부로 느끼며 후덥지근했어도 그 따스함이 좋았던 여름날의 새벽바람이 그립다. 간사한 것이 사람 맘이라지만 하루아침에 오늘보다 어제가 좋았다고 행복했었다고 운운하며 아무 일도 없이 그냥 지나가는 세월이 다행스럽다. 주말이면 늘 시끌벅적 이던 날이 늘 그랬던 것처럼 어린 손주들의 철없는 장난에 동심으로 돌아가서 같이 동동거리며 이리저리 방안을 기웃거리며 놀이터로 착각도 한다. 층간소음으로 아래위층의 주민 간의 다툼이 오간다고는 하지만 언제나 남의 집 일이라 생각할 때가 더 많다. 그러다 정신이 번쩍 들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 철없는 녀석들에게 교육이랍시고 조용히 하라고 엄포를 놓는다. 때마침 외출할 일이 생겨 단장에 들어가는 할머니를 바라보는 손녀의 눈에 반짝인다. 언제나 털털한 모습으로 넉넉한 옷에 민얼굴로 아이들과 비비고 뒹굴던 모습이 아닌 할머니 모습이 신기한 듯 보고 또 본다. 화장을 마치고 입술에 루주를 바르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손녀의 입술이 불쑥 나온다. 그러더니 늘 부르던 할머니라 부르지 않고 갑자기 엄마의 엄마라고 부른다.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너무 멋있고 예쁘다며 이제는 엄마의 엄마를 엄마라고 불러보고 싶다고 하니……. 아이들의 눈에 비친 할머니의 평상시 모습이 화장 한번 해 봤는데 신기함에 호칭까지 바뀔 줄이야. 육아를 하려면 돌보는 사람은 하루 옷을 세 번 이상 바꿔 입어줘야 한다고 꽤 오래전 신문에서 봤던 것이 생각났다. 이제부터라도 주말 할머니를 찾는 손주들을 위해 변신하고 또 변신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의 엄마가 너무 예뻐서 엄마라고 부르고 싶다는 손녀의 소원을 들어주려면 자기관리를 이제부터라도 게을리해선 안 되겠다는 각오 아닌 각오를 해본다. 거울 앞에 서면 민얼굴에 주름 가득 거친 피부 바라보면서 세월의 흔적을 지우지는 못할지라도 피부관리에 들어가야겠다. 작심삼일일지언정 외출할 때에는 선크림은 기본이라 했던가 화장대 서랍을 열고 넣어 두었던 선크림을 찾아 들여다본다. 유효기간이 눈에 희미하게 보인다. 한참 지났다. 아이들의 수시로 사주면서 신신당부했었는데 말이다. 손바닥 위에 콩알만 하게 짜 놓고 얼굴에 바르려니 영 마음에 걸린다 유효기간이. 화장지로 닦아놓고 뒤적뒤적 안쪽서랍에 또 하나의 선크림을 찾았다. 다행히 유효기간이 적당하다. 민얼굴에 발라 보니 환해 보이는 얼굴이 나 자신이 봐도 좋긴 하다. 먼 산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예쁘게 색칠하면서 단장을 하는데 나도 매일매일을 단장하는 기술을 배우기로 마음을 바꿔봐야 하겠다. 거리에 나서면 젊은이들의 싱싱함이 그저 부럽다. 그 시절에 나도 누군가에게 부러움을 느끼게 했을 테니 당연한 진리다. 젊음을 유지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미리 깨달았다면 지금의 모습이 달라져 있었을까? 반문해 본다. 마음은 청춘이라고 육체는 아닌 것을 알면서도 현실을 자꾸 잊고 산다. 신호등 앞에서 건널목을 건널 때면 한걸음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언제부턴가 조바심에 종종걸음으로 경보를 하는 모습을 발견할 때가 많다. 성큼성큼 발걸음이 가볍던 마음속 청춘이 마실을 간 게 분명하다. 돌부리도 없는데 신발이 작은 모래알에 자주 태클을 건다. 엄마의 엄마가 예뻐서 엄마라고 부르고 싶다는 손녀 생각을 하면서 지금의 나를 위해 하루 운동에 부지런해지려고 한다. 마음만은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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